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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단소리

대형교회의 분쟁과 개척교회

 과거 우리 나라에도 경제적인 빈곤의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어 보리를 수확하기까지 먹을 것이 없는 시기를 말하는데 그 때 가난한 사람들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고 한다. 나 또한 40대 중반으로 그 시기를 지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실감이 있지는 않는다. 적어도 굶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아이는 배 터져 죽고, 어른들은 배고파 죽는다'는 말이다.
 오랜 굶주림 끝에 얼마간 양식이 생기면 어른들은 배고픈 자식들을 위해 자신이 먹을 양을 자제하고 아이들에게 많이 먹도록 한 부모의 사랑에서 나온 말이다.
 오늘날 소망교회의 폭력사태를 보면서 대형교회의 세대교체를 염려하는 말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개척교회 목사로서 '대형교회는 배 터져 죽고, 개척교회는 배고파 죽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개척교회는 깨끗하고 대형교회는 부패하였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 모든 현상은 물질만능의 현실주의가 낳은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는 교회를 증축하기 위하여 성도들을 몰아 세우고, 개척교회는 속히 자립하기 위하여 성도들을 몰아 세운다. 교회에서 진리를 내세워 결국에는 복음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형태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좋아하는 단어가 '부흥'이라고 한다. 누가 어떤 프로그램과 방법으로 교회를 부흥시켰다 하여 세미나를 개최하면 전국에 있는 목회자들이 빚을 내어서라도 세미나비를 지불하면서 배우러 모여든다. 여기에는 개처교회고 자립교회고 구분이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리는 사라지고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만 것이다. 이것이 말세의 징조이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부흥을 원하지 않으신다. 부흥을 원하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진리는 진리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진정 부흥을 원하셨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필요도 없었다. 하나님의 목표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사하히고 그와의 관계를 회복하시는 일이다.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시어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희생을 당하셨다. 이것이 복음이며 이것이 진정한 부흥이다. 그러므로 오늘 교회들도 예수님과 같이 스스로 죽지 아니하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희생이야 말로 진정한 진리의 실천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듯이 말로만 진리를 외치고 속으로는 세상을 사랑하는 교회지도자들은 말세의 거짓선지자들이다. 이것은 대형교회와 개척교회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교회는 목회자들이 바로 서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부는 옳다고 생각이 되지만 그 명제가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개척교회에서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쳐 어느 정도 신자의 모습을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사라지고 없다. 찾아보면 대형교회에 가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고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기 싫다는 변명이 대부분이다.
 바울이 대형교회를 만들지 않았다. 베드로가 대형교회를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원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최후는 순교였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신앙의 보릿고개의 시대이다. 교회가 없는 것도 아니요. 대형교회가 즐비하지만 진리가 살아 있는 교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교회는 배 불러 권력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고 개척교회는 대형교회를 향한 욕망으로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시대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우리는 다시 그를 십자가에 내 몰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못박히러 오시지 않는다. 다만 그의 오심은 심판을 위한 것이다.
 오늘도 진리 가운데 서 있지 못하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참된 지리를 찾아서 헤매이는 성도들을 누가 안아 줄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가? 아니면 사람을 기쁘게 할 것인가? 참된 진리 안에 서 있는 성도라면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마땅하다.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떡 한조각이 남아 있어 감사하는 성도가 얼마나 있겠는가?
 12광주리가 남아 있어 감사하는 성도가 얼마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떡을 보면서 방황하는 자가 아니라 그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며 그 안에서 참된 자유함을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세대교체는 어떤 정치적이며 법적인 해법을 찾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내려 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결코 내려 놓을 수가 없다면 그는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스로 거짓 선지자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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