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우리는 죽어서 천국간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천국은 가는 곳이 아닙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가 흔히 듣는 복음의 메시지가 있다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예수 믿고 천국갑시다.’입니다. 우린 그렇게 들어 왔고 그렇게 전해 왔다. 그것은 대상이 비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되고 난 다음에도 그렇게 믿고 있다면 아직 초보적인 신앙입니다. 복음은 결코 천국에 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모든 종교에는 그 성질은 다르지만 저마다 구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그 구원을 천국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 천국은 우리가 말하는 천국과는 틀림없이 다른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모든 종교가 구원을 말한다고 하여도 그 구원이 진정한 구원이 아니기에 다원주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개념에는 기독교의 복음보다는 다원주의적 구원관이 더 깊이 스며들어 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 이유를 천천히 짚어 가겠습니다.
1. 천국에 왜 가야하는가?
천국에 가야하는 이유는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본인이 죽음을 절실하게 실감은 못할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는 수명을 다하여 죽는다.’라는 명제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죽으면 끝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 뒤에 어떤 세계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세계는 이승에서 선하게 산 자와 악하게 산 자에 따라 구분이 되는데, 선하게 산자들은 천국으로 악하게 산자들은 지옥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악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당신은 사후(死後)에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지옥이라고 대답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 천국에 가야한다. 누구나 죽기 때문입니다.
2. 어떻게 천국에 가는가?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부활하신 것 그리고 재림하신 것을 믿으면 천국 갑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적인 생각은 자신의 행위로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천국에 가는 방법은 일반적인 종교의 개념과 기독교의 개념이 갈라집니다.
이제 더 중요한 질문들을 이어가보겠습니다.
3. 천국은 어떤 곳인가?
천국에 갔다 왔다고 간증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거기에 속고 있는 것은 천국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하면 떠오르는 우리의 개념들을 단어들로 열거해 봅시다.
눈물이 없는 곳, 생명수, 생명나무, 홍보석, 녹보석, 황금길 등 우리가 금방 연상하는 단어들이 이런 것들이라면 우리는 천국을 잘못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천국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이런 단어들이 사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천국에 대한 중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중심은 ‘어떤 곳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랑 어떤 곳에 있느냐?’입니다.
4. 우리는 왜 천국에 간다고 하는가?
천국에 간다는 것은 죽음을 전재로 하는 고백입니다.
바울도 이와 같이 고백했는데,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5:8).” 이것은 죽어서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신 곳은 천국이고, 몸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죽어서 천국 간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천국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5:9).”
살아있는 자가 죽음을 이야기 하는 것은 미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는 것도 미래의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간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5. 천국은 가는 곳이 아니라 오는 것입니다.
천국은 나라입니다. 나라의 교과서 정의는 주권, 백성, 장소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장소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 거기에서 벗어나 주권과 백성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천국이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개념의 범위가 좀 더 넓어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 백성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그 곳은 어디입니까? 이 세 가지 질문에 바르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힌트를 준다면 모두의 대답에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주권이 그에게 있으며 그를 믿는 자들이 백성이 되고 그가 계신 곳이 천국(장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셨습니까? 아님 우리가 그에게로 갔습니까? 그가 오신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백성이 되었습니까? 그가 십자가상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백성이 되는 길을 여기고 그의 영(성령)으로 백성으로 보증해 주신 것입니까? 그가 성령으로 백성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는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가는 곳입니까? 아니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까?
6.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약속(언약)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 나라가 임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12:2-3). 그리고 다윗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삼하7:11-16). 그리고 그 나라의 성취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7.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모든 사역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의 중심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임하심을 그의 모든 생애를 통하여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성취하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옴으로써 이미 임한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8. 기독교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말합니다.
왜 우리는 부활을 말하지 않나요? 우리의 신앙은 부활신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깊이 말하지 않는 것은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부활은 단순히 천국에서 사는 몸의 변형정도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에서 살 수 있는 몸을 입는 것이 부활의 올바른 개념이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는 거룩한 백성들만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거룩함은 백성들의 행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거룩하다 칭함을 받음을 의미하며 그 마지막이 거룩한 몸을 입는 완성으로 부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으로 이어집니다.
9. 영원히 사는 곳
우리는 그동안 천국을 이기적인 곳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거짓된 천국 간증을 들어도 분별하지 못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화에서 보는 그런 천국을 지금도 그리고 있다면 속히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영원히 사는 장소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벧후3:13;계21:1). 여기에도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새롭게 한다는 것은 있던 것을 없애고 전혀 새로운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있던 곳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씻고 우리에게 부활의 신령한 몸을 주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새예루살렘 성전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계21:2). 그 성전은 하나님의 계심을 상징하는데 그 구조를 설명함이 있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계심을 말씀하십니다(계21장).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계심과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계신 장소를 의미하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10. 우리의 고백
죽어서 천국 가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구속의 은혜를 누리며 살고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천국을 누리면서 사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육과 영의 분리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여전히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죽은 자들이나 이 땅에 있는 자들이나 할 것 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종말에 모두 그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며, 이것을 영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의 증인이 되어 사는 것이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성도의 삶의 목적임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죽어서 천국 가는 성도가 되지 마시고 늘 천국을 누리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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