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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무엇인가?
김노아
2011. 3. 18. 01:20
신앙이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의외로 답변이 간단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 또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삶으로 돌아가면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변질되기 시작하는데,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하나님을 지방신으로 격하시키는 행위들을 하고 만다.
그리고 신앙인들이 하는 행동들은 금욕적이거나 신비적인 의식을 선호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광신적인 열심으로 신앙형식에 얽매이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1. 하나님을 아는 것
1)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마5:8)"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 스스로 마음이 청결해 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결론을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내리게 되면 금욕주의에 빠지게 된다. 종교적 의식에 열심으로 참여해야 된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광신도가 되어 버린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마음을 청결케 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열쇠이다.
우리는 스스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거나 율법을 모두 시키며 살 수 없는 본성이 타락한 존재이다. 이것을 예수님도 아시고 계실터인데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우리기들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하나님을 마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이가 지금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금욕적인 삶도 광적인 삶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일밖에 없다.
2)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열어주시는가 알 수 있다고 배웠다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직분을 가졌던지 상관없이 그는 속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선한 삶을 살았는가? 하는 영웅적인 삶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서 인간들의 역사를 어떻게 움직여 왔느냐 하는데에 성경 인물들이 모델이 되었던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물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하신 일을 알아야 하는데 인물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는 성경의 인물들이 타락한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에서 출발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을 아는데 이끌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리 훌륭한 성경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신하는 본성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있음이 초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삶
1) 변하지 않는 삶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일 많은 갈들에 부딪히는 것이 있다면 변하지 않는 자신의 삶이다. 생각이 변하지 않고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위장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위장을 위하여서 율법을 동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신앙의 척도로 삶는다.
하루에 몇시간을 기도하며, 성경을 얼마나 읽으며, 헌금을 얼마나 드리냐에 따라 신앙의 무게가 정해지고 평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는 스스로도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서 만족감을 느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고 위장을 한다.
2) 변하는 삶
배가 잘못된 길을 가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 그 길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장이 기류와 지리를 분명히 알고 길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키를 돌려야 한다.
우리의 삶의 변화는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그 정보에 따라 자신의 생각의 키를 돌려야 한다.
이전에는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악한 본성으로 하나님께서 주는 정보(지식)이 아니라 공중권세 잡은 자가 주는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내 가정, 내 자식, 내 육체가 즐겁게 지내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남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죄로 얼룩지게 되었다.
성도가 되어서도 이러한 습관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데, 그래서 성도는 육체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 싸움이 신앙생활이다.
우리가 싸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보를 가지고 이전에 육체대로 살던 습관과 그렇게 길을 인도하였던 생각의 근원이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넘어가야 한다. 생각의 주체가 이제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의 근원이 바꾸지 않으면 변화된 삶은 없는 것이며, 설령 변화된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능력이 없는 모양만 존재하는 것이다.
3. 생각하는 사람
1) 나의 생각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채식을 하며 수년을 생각하여도 스스로 악에서 건질 방법은 생각나질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의 근원에서 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기껏 훌륭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들이 인간의 근원이 악하기에 생각하는 것조차도 벗어나야 한다는 무책임한 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그것을 변화하기 위한 길들을 만들어 놓으셨고 그것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역사를 통하여서 그 약속을 이루어가셨다.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루어 가신은 그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눈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하나님은 아시기에 하나님 만이 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것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다.
2) 하나님의 생각
난 늘 한결같다.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나를 변화시키시기 위해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서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보게 되고 알게 된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삶을 산다면 그것이 윤리적으로 선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는다.
4. 결론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윤리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라는 것을 그의 삶의 형태를 통하여서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고 하고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앞세우기를 가르치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이것이야 말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이요 능력이 없는 껍데기 같은 삶이 되고 말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위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삶으로 돌아가면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변질되기 시작하는데,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하나님을 지방신으로 격하시키는 행위들을 하고 만다.
그리고 신앙인들이 하는 행동들은 금욕적이거나 신비적인 의식을 선호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광신적인 열심으로 신앙형식에 얽매이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1. 하나님을 아는 것
1)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마5:8)"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 스스로 마음이 청결해 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결론을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내리게 되면 금욕주의에 빠지게 된다. 종교적 의식에 열심으로 참여해야 된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광신도가 되어 버린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마음을 청결케 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열쇠이다.
우리는 스스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거나 율법을 모두 시키며 살 수 없는 본성이 타락한 존재이다. 이것을 예수님도 아시고 계실터인데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우리기들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하나님을 마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이가 지금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금욕적인 삶도 광적인 삶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일밖에 없다.
2)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열어주시는가 알 수 있다고 배웠다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직분을 가졌던지 상관없이 그는 속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선한 삶을 살았는가? 하는 영웅적인 삶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서 인간들의 역사를 어떻게 움직여 왔느냐 하는데에 성경 인물들이 모델이 되었던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물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하신 일을 알아야 하는데 인물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는 성경의 인물들이 타락한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에서 출발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을 아는데 이끌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드러내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리 훌륭한 성경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신하는 본성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있음이 초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삶
1) 변하지 않는 삶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일 많은 갈들에 부딪히는 것이 있다면 변하지 않는 자신의 삶이다. 생각이 변하지 않고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위장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위장을 위하여서 율법을 동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신앙의 척도로 삶는다.
하루에 몇시간을 기도하며, 성경을 얼마나 읽으며, 헌금을 얼마나 드리냐에 따라 신앙의 무게가 정해지고 평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는 스스로도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서 만족감을 느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고 위장을 한다.
2) 변하는 삶
배가 잘못된 길을 가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 그 길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장이 기류와 지리를 분명히 알고 길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키를 돌려야 한다.
우리의 삶의 변화는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그 정보에 따라 자신의 생각의 키를 돌려야 한다.
이전에는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악한 본성으로 하나님께서 주는 정보(지식)이 아니라 공중권세 잡은 자가 주는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았다. 그래서 내 가정, 내 자식, 내 육체가 즐겁게 지내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기에 남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살았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죄로 얼룩지게 되었다.
성도가 되어서도 이러한 습관은 쉽게 버리지 못하는데, 그래서 성도는 육체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 싸움이 신앙생활이다.
우리가 싸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보를 가지고 이전에 육체대로 살던 습관과 그렇게 길을 인도하였던 생각의 근원이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넘어가야 한다. 생각의 주체가 이제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의 근원이 바꾸지 않으면 변화된 삶은 없는 것이며, 설령 변화된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능력이 없는 모양만 존재하는 것이다.
3. 생각하는 사람
1) 나의 생각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채식을 하며 수년을 생각하여도 스스로 악에서 건질 방법은 생각나질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의 근원에서 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기껏 훌륭한 생각이라고 하는 것들이 인간의 근원이 악하기에 생각하는 것조차도 벗어나야 한다는 무책임한 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그것을 변화하기 위한 길들을 만들어 놓으셨고 그것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역사를 통하여서 그 약속을 이루어가셨다.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이루어 가신은 그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 눈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하나님은 아시기에 하나님 만이 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것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다.
2) 하나님의 생각
난 늘 한결같다.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나를 변화시키시기 위해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서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보게 되고 알게 된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삶을 산다면 그것이 윤리적으로 선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는다.
4. 결론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윤리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라는 것을 그의 삶의 형태를 통하여서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고 하고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앞세우기를 가르치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이것이야 말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이요 능력이 없는 껍데기 같은 삶이 되고 말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위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