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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형편없는 믿음

김노아 2016. 12. 30. 05:40



아브라함의 형편없는 믿음


오래 전 어느 대형교회에서 인물별성경연구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내가 성경을 잘 모르던 때에 성경에 등장하는 위인들의 믿음을 본받기 위하여서 그 책을 사서 공부한 기억이 난다. 이후 그 책은 나의 책장에서 폐기되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 아브라함, 이삭, 노아, 모세와 같은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의 믿음이 출중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들을 성경의 위인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나는 성경을 보면서 이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믿음을 가졌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의 취향이 이상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믿음은 형편없다.

 

만약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믿음이 출중하다면. 우리에게는 그만큼 믿음에 대해서만큼은 희망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는 영웅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꼴이 되고 만다.

 

성경에 나타난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은 철저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길을 걸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어 위험과 실패에서 건져주신다. 결국 하나님의 철저한 은혜 가운데서 그들의 믿음이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과 백성으로서 믿음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열렬한 인도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물별로 성경을 연구한다면 그들의 훌륭한 믿음은 드러날래야 드러날 수가 없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이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는 정도로 그친다.

 

아브라함의 경우 히브리서 118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서술하고 있으며 17절에서는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고 평가를 하고 있다. 이런 평가를 볼 때 우리는 그들은 정말 믿음이 출중한 자들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그 믿음이라는 개념은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기 전에 아브라함이 얼마나 믿음이 형편없었던 인물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히브히서 118절에 드러난 것과 같이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살펴보자.

 

창세기 12장에 아브람이 등장하는데 아브람이 어릴 적부터 신앙이 뛰어난 어떤 인물이었다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첫 등장이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로 시작한다.

 

아브람의 첫걸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부터이지 자발적인 믿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121절에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신다. 물론 여기에서는 사람과의 인연을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 장소적인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으나, 사람과의 인연도 포함하고 있다면 아브람은 온전히 순종한 것이 되질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친척과 아버지도 길을 떠나는데 동행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아브람이 믿음으로 길을 떠났다고 말한다.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는데 말이다. 이것이 아브람의 불신앙을 증명하기에 좀 부족하다면 다음을 보자.

 

마침내 아브람에 가나안 땅에 이르렀고 하나님은 그 땅을 아브람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그곳이 아브람이 정착할 곳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브람은 이집트로 내려간다. 그것은 기근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근이 찾아와도 머물러 있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맛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하여 이집트로 내려가는데 좀 나쁘게 말하자면 자기 아내를 팔아서라도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마음으로 가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이집트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는 하였지만 자기 아내는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빼앗기고 만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자기 마누라를 팔아먹는 놈을 보고 믿음이 있다고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 사건에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는 영영 자기 마누를 찾지도 못할뿐더러 그곳에서 불명예스럽게 인생의 막을 내렸을 것이다.

 

창세기 15장에 와서는 아브람은 하나님께 자식이 없는 것에 대해 투정을 부린다. 우리가 성경에 본 바와 같이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실 때 그에게 자손을 주겠다고 언약하였는대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시간에 주질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벌하지 않으시고 언약식을 통하여 그가 언약을 이루실 것을 증거하신다. 이 정도 되었으면 그는 진득하게 기다려야 마땅한데, 늙어가는 자신을 보니 현실적으로 자식을 가질 기회가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의 아내에게 졸라서 젊은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그 아들이 자신의 유업을 이을 아들이라고 장담을 한다. 이로 인해 가정의 불화가 일어난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언약을 상기 시켜 주고 그의 몸에서 아들이 날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의 부부가 생식 능력을 상실하였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을 낳게 된다. 그리고 이삭을 낳으면서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조금 깨닫게 된다. 조금 깨닫게 된다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이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에 주저없이 그를 제물로 드리려고 했던 그의 행동을 높게 쳐 주어서 표현한 것이다. 이 때 믿음이 있는 듯이 보이는 행동이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추잡함은 그 이후 창세기 25장에 드러나는데 아브람이 후처 그두라는 맞이하여 6명의 아들을 낳는데 그 후손 중에 하나가 나중에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앗수르의 조상 단이다.

 

아담 이후로 인간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로 이어진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중심으로 자신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성경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가 자기 백성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이다.

 

결국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택하셨기 때문이고 그를 통하여 언약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나온 것이지 추호도 아브라함의 인물됨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안심과 한도의 한숨을 쉬어도 된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측량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그의 백성들을 인치시고 인도하시면서 그 공을 자기 백성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부추켜 주신다. 그리고 그 믿음을 인정하여서 하나님 나라에서 그와 함께 영원히 왕노릇하시는데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모습이며 그것을 깨달아 알기를 원하시는 분이 또한 하나님이시다.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위인들의 믿음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을 폄하하는 꼴이 되고 만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출중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잊지 말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