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
우리가 원하는 참된 왕
노아 김태우 목사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이 분주하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이상적인 국가가 무엇이고 거기에 걸맞은 지도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를 정의하기를 ‘소수나 특정한 집단이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정치지도자는 이러한 정치적 목표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이러한 ‘이상국가’를 이루지 못하였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라는 국가를 체험하였고, 가나안 정복이후 그들도 그러한 국가를 이루고 싶어 왕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것을 잘못된 생각이라고 할 수 없다. 신명기 17장 14절에 이미 왕국이 형성될 것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하지만 문제는 당시의 상황과 동기에서 비롯된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것은 열방과 같이 되고자 하는데 있었다.
삼상8:4-5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이 요구에 하나님의 평가는 이러했다.
삼상8:7-8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이스라엘은 이방과 같이 되어서는 안되었다. 그들은 거룩한 나라로 선택함을 받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통치하는 이상국가의 모형이 되어야만 했다.
출19:3-6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열방과 같은 왕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명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은 열방과 같이 대외적인 문제들을 동맹을 통하여서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은 사람이 원했던 실패의 왕으로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가는 왕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 두 왕의 차이점은 시내산의 언약을 믿고 따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었다. 시내산의 언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용사이므로 그를 의지할 때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믿음이었다.
골리앗을 대항할 때에 다윗은 그 언약을 믿고 싸움에 나갔으나 사울은 자기의 장막에 웅크리고 있었다.
다른 나라와 왕직이 구별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열방의 모형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왕직의 특징을 살펴보자.
1. 이스라엘의 왕은 선지자를 통하여 선택하였다(삼상9:16;16:12)
2. 선지자는 기름을 부어 왕의 권위를 부여하였는데, 이는 왕과 백성에게 이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었다(삼상10:1;16:2). 기름부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우는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선택하였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것이다.
3. 왕은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성령을 받았다. 새 왕이 세워지면 옛 왕에게서는 성령이 떠나갔다(삼상10:6;16:13).
4. 하나님은 새로운 왕의 능력을 공공연히 알림으로 그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천거하였다.
이러한 왕의 세움은 이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모형이 되기도 한다.
다윗은 언약의 최고의 상징인 법궤를 바르게 다룬 이스라엘의 참되고 이상적인 왕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서에게 주신 ‘아들’이란 칭호가 다윗 왕에게로 이어진다(출4:22;삼하7:14).
다윗이 하나님이 세운 이상적인 왕이라는 것은 그는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왕으로서 통치하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는 것을 그의 행위를 통하여서 드러낸다.
1. 다윗은 예루살렘을 성전의 장소로 확보하였다(삼하5:6-10;24:18-25)
2. 다윗은 그 땅에 안식을 가져다 주었다(삼하5:17-25;7:1).
3.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 왔다(삼하6:1-15).
4. 사울의 왕조가 끝났다(삼하6:16-23).
5. 하나님이 다윗의 왕조를 안전케 하셨다(삼하7:8-16).
6.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였다(삼하7:1-7;왕상6장)
이스라엘 왕국은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아래서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이후 이스라엘 역사는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나 동시에 선지자들은 의로운 왕의 통치 아래 산다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선포하였다.
예수님의 탄생 전후의 예언들은 구약의 왕직의 소망으로 가득하였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자신의 아들이 장차 수행할 사역을 예언할 때 ‘다윗의 집’에서 출생한 구원자이신 예수님과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눅1:68-71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시므온이 성전에서 예수님을 팔에 안았을 때 그는 주의 날이 임한 것, 즉 이사야에 예언된 여호화의 종과 관련된 왕이 임하셨다고 믿었다.
눅2:29-32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에서 사울과 다윗과 이사야 11장에 언급된 이상적인 왕의 특징을 보이셨다.
예수님은 성부에 의하여 왕으로 선택되었다. 구약에 선지자들이 왕에게 기름을 부음과 같이 예수님은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그 때에 성령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리고 광야에서 사탄을 물리치심으로 자신의 권세를 나타내 보이셨다.
예수님이 사탄을 이기신 이적은 이사야 11장의 정신이 담긴 이사야 61:1-3의 성취로 이해해야 한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예수님에게 주어진 아들이라는 칭호는 출애굽 때의 이스라엘 백성과 다윗 그리고 예수님에게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스스로 인자(사람의 아들)라고 칭하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대망하는 그런 왕이 아님을 나타내는 칭호이다. 그의 왕직은 종이신 왕의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써 종이신 왕의 모습을 보였다(요13:1-5). 그리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써 죄 있는 백성들의 낮은 자리에 서신 이상적인 왕이셨다. 그리고 그는 사랑으로 통치하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으며 이를 하나님이 높이사 보좌의 우편에 앉게 하셨다(히1:1-13).
그리고 그 날은 온세상이 예수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는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