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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대안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의 마음
김노아
2009. 1. 3. 00:56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다
“대안학교? 그게 뭔데?” 처음에는 아내의 제안이 선뜻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중 3인 아들 녀석의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중, 아들 녀석을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내자고 말하는 아내는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을 결정한 모양이었다.
학교 설명회 날, 시큰둥해 하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 서울에서 멀리 충남 서산까지 생전 처음 가 보는 길을 더듬어 학교를 찾아가면서, 나 또한 생각이 복잡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때, 집을 떠나 있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까? 아무리 뭐라 해도 정규학교가 아닌, 대안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아이의 장래 진로에 제약을 주는 것은 아닐까? 동떨어져 있는 학교에서 공부해가지고 치열하게 공부하는 일반학교 친구들과 경쟁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초행길이라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느즈막히 되어서야 겨우 학교에 도착했다. 시골 산 속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여러 상상을 했었는데, 당초 걱정했던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건물과 시설들이 괜찮아 보여 한편으로 마음이 조금 놓였다. 무엇보다도 지나가는 여러 학생들이 처음 보는 손님인 우리들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밝음과 신선함도 느껴졌다.
공식 설명회가 다 끝난 뒤, 상담석에 앉아 계신 한 재학생의 어머니(당시 학부모회 대표)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눈에 띄지 않게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 중에서, 그리고 많은 독서를 통해서, 명사와의 대화를 통해서 아이들이 비전을 세우고, 키워 갑니다. 사랑이 넘치는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올바른 공동체 의식과 가치관을 세우게 됩니다….”
꿈같은 이야기였다. 가슴이 뛰었다. 이런 학교가 다 있었나? 내가 왜 몰랐지? 우리 아들은 꼭 이곳에 보내야 할 것 같았다.
집으로 올라오면서 아내와 함께 줄곧 아들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강한 거부감을 갖던 아들도 직접 학교를 보고, 또 선발캠프라는 사전 경험을 통해 학교에 다닐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마음이 기우는 것 같았다. 사실 학비와 기부금의 액수는 부담스러웠지만,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다는 기대로 기꺼이 부담하기로 했다.
그 뒤 선발캠프를 거쳐 드디어 아이가 입학하던 날, 아이의 기숙사에 옷가지와 이불 등을 내려주고 생전 처음으로 낯선 곳에 아이를 남겨 두고 아내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왠지 허전한 느낌에 잠은 오지 않고 뒤척이고 있는데, 아내가 조금씩 훌쩍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들을 낳고 처음으로 멀리 떼어놓고 온 것이 못내 가슴이 아렸던 모양이다. 화살이 활을 떠나듯, 어차피 언젠가는 부모를 떠나야 하는 것이 자식들 아니냐며 아내를 위로했다.
그렇게 아이를 그 학교에 보낸지 벌써 2년하고도 2개월이 되었다. 처음 보낼 때의 생각과 실제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그동안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도 있어서 많은 기도가 필요했었지만, 아이를 그곳에 보낸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후회가 없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부모로서 그동안 느꼈던 것들에 대해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대안학교에 보내 좋았던 것들
1. 아이들의 행복
부모로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가장 첫번째 이유는 아이에게 너무나 중요한 청소년기를 행복하게 보내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아마도 내가 지내온 중고교 시절이 너무 힘들고 어려웠기 때문에 내 아이에게 만큼은 행복한 시절을 보내게 해주고 싶은 보상심리가 작용했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주변에서, 매스컴을 통해서 들려오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뒤틀리고 고통스러운 학교생활 속으로 내 아이를 밀어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친구들에게 왕따 당할까 염려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자고 밤에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생활이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것이었다.
이곳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면서 내신이나 성적으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와 경쟁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물론 학교에서의 시험이 있고, 그 안에서도 실력 경쟁이 있지만, 일반 공교육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스트레스와 경쟁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아이들의 생활은 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생활이 아니라, 여가시간에는 친구들과 웃통 벗고 땀흘리며 운동하거나, 좋아하는 악기에 심취하여 연습에 열중하거나, 친구들과 끼리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는 생활은 그들의 이 파릇파릇한 시절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더구나 신앙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의 생활이므로 일반 학교에서 겪을 수 있는 교우관계에서의 갈등, 정서적 갈등, 신앙적 갈등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행복의 요인이었으리라.
지금 이 아이들이 당장 직접적으로 행복의 크기를 느끼지는 못한다 해도, 나중에 장성하여 이 때를 돌아보며 ‘아, 정말 나의 학창시절은 행복했다’고 자랑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한 행복이 밑거름이 되어 아이들의 일생을 더욱 풍성하게 하리라 믿는다.
2. 사랑과 열정의 선생님들
이곳 대안학교의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학생들과 숙식을 함께 한다. 아마도 선생님들에게는 이것이 힘든 근무조건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하루 종일 선생님들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그들의 숨소리까지 듣는 선생님들, 호흡이 맞닿는 곳에 있는 선생님들과 자연히 대화도 많아지고 깊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학생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의 열정이 더해지니 참된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 같다.
청소년 시절, 느닷없이 찾아오는 여러 가지 고민들을 나눌 사람이 없어 힘들어 했던 나의 청소년기를 되돌아보며,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이러한 선생님과의 인격적 만남 속에서 아이들이 사람에 대해 배우고,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과 대화하는 것을 익히게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3. 새로운 경험
아들 녀석은 이곳에 들어가자마자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틱틱 거리고 소리도 제대로 못내더니, 이제는 제법 어려운 곡도 들어줄 만할 정도로 연주하는 실력이 되었다. 사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너무나 기타가 치고 싶어서 학원을 등록했다가, 시간이 없어 3개월만에 포기해야 했던 아쉬운 기억이 남아 있어서, 음악 시간에 기타를 배우는 아들 녀석이 속으로 너무 부러웠다.
1학년 가을학기 때는 약 5개월 동안 중국에 가서 생활하다 왔다. 비록 그 기간이 학습량으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지 몰라도, 그 기간동안 타국, 그것도 중국이라는 곳에서 지내면서 개념 상의 이웃나라 중국이 아닌, 피부로 느끼는 중국을 담아 가지고 왔으리라 믿는다.
또한 이 학교에서는 여름방학 직전 약 5일에 걸쳐서 국토순례를 한다. 찌는 듯이 더운 날씨에 햇볕과 비바람을 뚫고, 걸어서 이 나라의 일부분을 직접 발로 밟아보고 오는 것은 단순히 극기 훈련적 행사가 아닌,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라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믿는다. 이와 같은 새롭고 다양한 경험들은 일반 학교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것들이 아닐 수 없다.
대안학교에서 안타까왔던 것들
1. 올바른 설립정신은 기본.. 그러나 설립정신을 뒷받침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나 그렇지만, 뜻이나 말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다. 사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학부모들이 용감(?)하게 자녀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은 대안학교의 설립정신과 취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며, 상당한 물질적, 시간적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또한 많은 학부모들은 상대적인 실망과 걱정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기대했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설립정신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설립정신이라도 이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필요한 시스템이라 하면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는데, 첫째, 양적 질적으로 충분한 인력, 둘째, 잘 조직화된 커리큘럼과 프로그램, 셋째, 교육에 적합한 시설, 넷째, 이 모든 것을 통합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경험 많은 관리자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이중 어느 하나도 규모가 크지 않은 대안학교가 제대로 갖추기에는 쉽지 않은 사항들이다.
오로지 헌신하는 교사들의 열정과 사랑이 이 모든 것들의 부족을 대신 메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면 너무 단순한 평가일까? 물론 대안학교가 이러한 내용들까지 모두 만족스럽게 갖춘다면 어쩌면 말 그대로의 대안학교가 아니라, 고급 사립학교가 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의 인재를 키워내는 학교로서 존립하고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2. 교육도 돈. 재원이 필요하다.
어쩌면 앞에서 언급한 시스템의 문제와 동전의 앞뒤와 같은 문제일 수 있다.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는 것에는 거의 항상 많은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대안학교의 운영은 거의 100% 학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이루어진다. 몇몇 대안학교의 경우, 대안교육을 위하여 사재를 출연하는 독지가가 있는 경우도 있으나,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학부모 전체가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경우라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형편이 여의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오직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는 마음만으로 자녀를 보낸 부모님들도 적지 않은 만큼, 학교 운영을 위한 등록금의 문제는 항상 학부모들 사이에 뜨거운 감자가 된다.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지출이라 판단하여 사용하더라도, 그 결정이 사전에 학부모들과 협의가 되지 않았다든지, 사전에 치밀한 계획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학부모들의 저항에 부딪히기 쉽고, 일단 지출이 이루어지고 나면 다른 더 필요한 부분의 재원이 부족해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학교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과 조달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집행하는 과정이 철저히 연구되고,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3. 신앙이 우선인가, 실력이 우선인가
기독교 대안학교에서의 자녀들의 영적 성장과 학력 신장 사이의 충돌도 매우 민감한 문제다. 누구나 영성과 실력의 균형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 과연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잡느냐 하는 문제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다.
혹자는 세상의 학교에서처럼 학과 교육에 아이들을 몰아대는 것은 기독교 대안학교의 설립취지를 벗어나는 것이며, 그럴 바에는 왜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가? 라고 반문하는 부모님들이 있는 반면, 영성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영성만을 강조하고 실력 양성을 소홀히 하면 과연 세상에 나가 우리 아이들이 바른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라고 역설하는 부모님들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충돌이 학교내 교사들 사이에서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이야 각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할지라도, 최소 학교내 선생님들간에는 학교의 교육 방향에 관하여 상당히 접근되고 일치된 입장을 가져야 배우는 학생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선생님들 간에도 말씀하시는 방향이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하여, 아이들이 가치 확립에 혼란을 느끼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학교에서의 신앙훈련 중에 아이들의 소명의식을 일깨우고 발전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방황하던 청소년 시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하고 나서부터,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변화되었던 경험이 있다. 강제적인 교과학습은 그 자체로는 아이들에게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더 크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기도와 묵상 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의 만남 중에서 자신의 소명과 비전을 찾는 경험이 있은 다음에라야 교과학습의 효과가 크게 배가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다른 말로 자기 성취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실력 양성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갖는 남은 소망
우리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지 벌써 2년 하고도 2개월, 이제 고 3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상의 아름다운 숲을 지나, 현실이라는 도도한 강 앞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간 보이게, 또 보이지 않게 변화하며 자라 온 아이를 바라보며 감회가 새로워진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아이의 미래를 과연 어떻게 펼쳐 가실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때문에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더욱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나 한가지 믿고 확신하며 기도하는 것은 이 학교에서의 3년이 우리 아이에게 준 행복과 기쁨 뿐만 아니라 어려움과 부족함의 경험,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함께 했던 이들과의 대화, 홀로 하나님과 만났던 기도의 시간, 이 모든 것들이 아이의 삶 속에 스며들어서 삶을 더욱 굳게 하고, 항상 솟아나는 샘물처럼 자신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계획대로 우리 아이가 쓰여지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모든 우려와 걱정을 무릅쓰고 아들을 기독교 대안학교에 보낸 부모로서의 남은 소망이다.
이병락 편집자문위원 / KM컬쳐 부사장(뉴스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