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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던진 부모말에 멍드는 아이 가슴
김노아
2009. 1. 3. 16:40
무심코 던진 부모말에 멍드는 아이 가슴
몇 년전 한 어머님이 여고생 딸을 데리고 진찰실을 방문했다. 딸이 몇 달
전부터 학교에도 가기 싫어하고, 식사도 거부하고 자기 방안에만 처박혀 있
다며 정신질환이 아닌가 의심되어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러
는지 아무리 물어봐도 납득할만한 대답을 안해주고 학교도 안가겠다고 해서
어떤 때는 달래도 보고, 어떤 때는 야단도 쳐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는 것이다.
학생은 몸이 몹시 여위어 있었고 얼굴에는 생기도 없이 멍하게 바깥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병원에 오기도 싫은데 괜히 어머니에게 끌려 왔다는 눈치
였다. 수십분간 대화를 하자고 설득했지만 별다른 고민은 없다고 말할 뿐
전혀 자기의 마음을 털어 놓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와 상의 끝에 할 수
없이 입원을 시키게 되었다. 입원후에도 전혀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지 않았
으나, 어떤 문제라도 얘기하면 도와주겠다는 필자의 말에 "선생님이 도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헛수고 말라"는 얘기를 한 마디 했다. 자기에게 어
떤 괴로운 문제가 있음을 암시하는 한 마디 말이었다. 그러나 쉽게 구체적
인 내용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후 몇 일에 걸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우들을 들어가면서 자기의 문
제가 무엇인지 물어본 필자의 정성에 감동을 했는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털
어 놓았다.
자기는 3남 3녀 중 막내인데, 사실은 그집 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
는 자기가 부모나 다른 형제와 전혀 닮지 않았고, 어릴적부터 어머니나 다
른 형제들로부터 자기는 누가 대문앞에 버리고 간 것을 데려다 키웠다는 말
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계속 듣
다보니 정말처럼 들렸고 또 자기가 식구들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
루어 보건데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몇 개월 전, 가족
들끼리 모여 앨범의 사진을 구경하던 중 형제들은 모두 돌사진이 있는데 자
기만 돌사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더니 어머니는 얼버
무리면서 정확한 대답을 안 해주었다고 했다. 학생은 그 순간 정말 자기가
주어 온 애로구나 하고 믿게 되면서부터 만사가 싫어지고, 밥맛도 떨어지고
학교가는 것도 거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이 학생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삶에 대한 의욕까지 잃어버리
게 되었다고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 말을 전해들은 부모님 역시 어이
가 없다는 표정이었고, 오히려 그런 문제로 고민해 왔던 학생에 대해서 분
노심까지 표현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러나 그럴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재미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만 아
무 것도 모르는 어린이 마음은 그것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없다.
더구나 반복적으로 그런 말을 들을 때는 서서히 의심이 싹트게 된다. 어른
인 경우에도 열 사람이 뭉치면 한 사람쯤 쉽게 바보로 만들 수 있다고 하는
데, 어린이의 경우에는 더 쉬울 것 아니겠는가?
필자의 이런 여러 가지 말들을 듣고 난 부모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정말
잘못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딸을 만나 사과를 하고 딸의 심정을 이해하면
서 딸이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모든 대답과 설명을 다 해주었다. 딸의 돌사
진이 없는 것도 사실은 그애가 막내딸이고, 또 그 당시 아버지 사업이 잘
되지 않아 무시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라고 솔직히 말하고 사과를 하게 되었
다. 그후 그 학생은 다시 활기를 되찾아 퇴원하였고 가끔 잘 지낸다는 연락
을 해주었다.
무심코 던진 부모말에 멍든 다른 한 남학생의 경우를 소개해 보겠다. 몇
년전 한 남학생의 어머니가 필자의 진료실을 방문했다. 아들이 세 명 있는
데 그 중 막내가 남자답게 씩씩하지 못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고, 집에서도
혼자서 자기 방에만 있을 때가 많고, 학교친구들이 자기를 놀린다며 학교가
기도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잘 지내 왔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서부터 서서히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부모도 성실한 편이고 큰 문제점은
찾을 수 없었다. 우선 학생을 한 번 만나 보자는 필자의 제의에 어머니는
몇 일간 학생을 설득하여 학생을 진료실로 데리고 왔다.
키는 큰 편이나 몹시 여위어 보였고 얼굴은 예쁘장하게 보였다. 필자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몹시 수줍은 듯이 얼굴을 밑으로 숙이고 앉
아 있는 모습이, 필자로 하여금 마치 예쁜 색시와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갖
도록 했다. 왜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는 지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대해서
처음에는 아무런 대답도 안하다가 얼마 뒤, 자기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씩
씩하게 살고 싶은데 친구들과 어울리면 자기 의지와는 달리 수줍고 부끄러
운 생각이 들어 씩씩하게 행동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면담을 통해서 그 이유를 밝혀내
고 다시 노력하면 씩씩해질 수 있다는 필자의 제의에, 학생은 처음에는 타
고난 성격을 어떻게 고치냐면서 거부하다가 끈질긴 필자의 설득에 나중에는
한 번 해보겠다고 약속하게 되었다. 여러 번에 걸친 면담에서 학생은 자기
가 어린시절 동안 여자옷을 자주 입었던 기억을 되살려 내었고 또 가끔 부
모가 자기에게 "네가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얘기를 했었던
것을 기억해 내게 되었다. 또 자기가 여자옷을 입고 여자애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시던 부모님들의 모습도 기억하게 되었다. 그 학생이 씩
씩하지 못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게 된 것은, 어릴 적에 바로 이런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딸로 태어났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들이 둘 있기 때문에 딸 하나
를 낳아서 예쁘게 키우고 싶었는데…"라는 부모의 말과, 또 자기가 예쁜 여
자옷을 입고 재롱을 떨 때 즐거워 하시던 부모 모습이, 어린시절 동안 학생
으로 하여금 씩씩한 남자의 성격과 태도를 갖추도록 하기보다는 여자같은
성격과 태도를 갖게 한 것이다. 즉 자기는 남자로서는 부모로부터 환영받을
수 없고 여자여야 환영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
서 부모들이 좋아하는 여자 역할을 은연중에 계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격
형성에 가정 결정적인 어린시절동안 이 학생에게 형성되었던 이런 성격과
태도는 학생으로 하여금 씩씩한 남자처럼 행동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왜
냐하면 이런 점들이 무의식 속에 숨어서 학생의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얼마 뒤 부모와 함께 면담하는 자리에서 학생의 이러한 얘기를 들은 부모는
깜짝 놀라며 아무 뜻 없이 했었던 말에 그렇게까지 영향을 받을 줄은 몰랐
다고 하며, 결국 자기들의 욕심 때문임을 깨닫고, 학생에게 잘못된 점을 시
인하고 이제부터는 남자답게 씩씩하게 살아줄 것을 당부하게 되었다. 그후
몇 회의 추가면담을 통해서 남자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을 하
면서 그 학생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과거의
영향을 말끔히 지워내지는 못했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
게 노력하면 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후 그 학생은 학
교에 잘 다니게 되었다.
지금까지 무심코 던진 부모말에 멍든 두 학생의 경우를 말하고 또 치료과
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였다. 두 학생의 경우 모두 현실적인 어려움 밑에
는 과거 어린시절부터 지속되어온 부모형제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점들
이 깔려 있었다. 특히 부모들이 무심결에 말했었던 내용속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부모들이 생각할 때는 별 문제가 아닌 것 같아도 인격적으로 성숙
이 되어있지 않은 어린 마음에서 들을 때는 심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
린이에 있어서 부모의 위치란 자기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절대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출생후부터 생후 6∼7세경까지는 인격형성의 기초과정에 해
당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 청소년
기도 정서적으로 불안전하고 예민한 시기이기 때문에 자칫 무심결에 내뱉는
부모의 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어머니가 화가나서 "나가 죽어라"고 한 말에 발끈해서 진
짜 죽으려고 약을 먹고 가족들에게 발견이 되어 병원 응급실로 오는 경우도
있다.
부모들이 무심코 던져 자녀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는 말들은 수없
이 많지만 흔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왜 저런게 태어나서 속을 썩이나?"
"차라리 내가 죽는게 낫겠다."
"옆집 친구 반만큼이라도 해라."
"너만 없으면 우리집이 조용할텐데."
"앞으로 네가 잘되나 두고 보자."
"이 웬수야."
"너 같은 것 필요없으니 나가 죽어라."
"넌 내자식도 아니야."
"너 같은 것은 밥먹을 자격도 없다."]
"짐승보다 못한 놈"
이런 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자녀에 대한 부모의 거부감과 관계
되어 있다. 이러한 말들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되는 것
은 바로 이 거부감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밥만으로는 살아 나갈 수 없다. 따뜻한 부모의 사랑
을 필요로 한다. 어떤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
다. 출생시부터 본능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잘 처
리되지 못할 때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게 된다. 그것이 직접 표현이 되면
비행이나 폭력을 만들게 되고, 마음속에 억압을 해두면 각종 정신장애, 노이
로제 그리고 정신병을 만들게 된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평소 부모형제들이 자기를 평가하고 대해 준 것처럼
남들이 자기를 평가하고 대해 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또 과거 자기
부모형제들을 대하던 기분으로 남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반응을 '아동기 정
서양상'이라고 부른다. 어린시절부터 부모에게 환영받고 한 인격체로서 대접
받을 때 그런 건강한 자존심과 긍지, 그리고 자신감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한 인격체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할 때는
자존심과 긍지에 손상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심각한 열등감 속에 휩싸여 건
강한 인생을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 어린시절 동안의 부모의 모습은 그 사
람의 전 인생을 통해서 그 사람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고 나중에는 부모가
옆에 없어도 그 이미지 때문에 남들이 자기를 나쁘게 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이 점을 잘
알아야겠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무리 화가 나고 괴롭더라도 되도록이면 자
기의 감정을 억누르고 진지한 태도로 대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자녀가
잘못했을 경우에도 전혀 야단을 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말해
서는 안 될 내용의 말들을 홧김에 내뱉어서는 안된다는 얘기이다. 무심결에
내뱉게 되는 이런 말들이 자녀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전 한 어머님이 여고생 딸을 데리고 진찰실을 방문했다. 딸이 몇 달
전부터 학교에도 가기 싫어하고, 식사도 거부하고 자기 방안에만 처박혀 있
다며 정신질환이 아닌가 의심되어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러
는지 아무리 물어봐도 납득할만한 대답을 안해주고 학교도 안가겠다고 해서
어떤 때는 달래도 보고, 어떤 때는 야단도 쳐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는 것이다.
학생은 몸이 몹시 여위어 있었고 얼굴에는 생기도 없이 멍하게 바깥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병원에 오기도 싫은데 괜히 어머니에게 끌려 왔다는 눈치
였다. 수십분간 대화를 하자고 설득했지만 별다른 고민은 없다고 말할 뿐
전혀 자기의 마음을 털어 놓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와 상의 끝에 할 수
없이 입원을 시키게 되었다. 입원후에도 전혀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지 않았
으나, 어떤 문제라도 얘기하면 도와주겠다는 필자의 말에 "선생님이 도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헛수고 말라"는 얘기를 한 마디 했다. 자기에게 어
떤 괴로운 문제가 있음을 암시하는 한 마디 말이었다. 그러나 쉽게 구체적
인 내용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후 몇 일에 걸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우들을 들어가면서 자기의 문
제가 무엇인지 물어본 필자의 정성에 감동을 했는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털
어 놓았다.
자기는 3남 3녀 중 막내인데, 사실은 그집 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
는 자기가 부모나 다른 형제와 전혀 닮지 않았고, 어릴적부터 어머니나 다
른 형제들로부터 자기는 누가 대문앞에 버리고 간 것을 데려다 키웠다는 말
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계속 듣
다보니 정말처럼 들렸고 또 자기가 식구들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
루어 보건데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몇 개월 전, 가족
들끼리 모여 앨범의 사진을 구경하던 중 형제들은 모두 돌사진이 있는데 자
기만 돌사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더니 어머니는 얼버
무리면서 정확한 대답을 안 해주었다고 했다. 학생은 그 순간 정말 자기가
주어 온 애로구나 하고 믿게 되면서부터 만사가 싫어지고, 밥맛도 떨어지고
학교가는 것도 거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이 학생이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삶에 대한 의욕까지 잃어버리
게 되었다고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 말을 전해들은 부모님 역시 어이
가 없다는 표정이었고, 오히려 그런 문제로 고민해 왔던 학생에 대해서 분
노심까지 표현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러나 그럴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재미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만 아
무 것도 모르는 어린이 마음은 그것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없다.
더구나 반복적으로 그런 말을 들을 때는 서서히 의심이 싹트게 된다. 어른
인 경우에도 열 사람이 뭉치면 한 사람쯤 쉽게 바보로 만들 수 있다고 하는
데, 어린이의 경우에는 더 쉬울 것 아니겠는가?
필자의 이런 여러 가지 말들을 듣고 난 부모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정말
잘못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딸을 만나 사과를 하고 딸의 심정을 이해하면
서 딸이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모든 대답과 설명을 다 해주었다. 딸의 돌사
진이 없는 것도 사실은 그애가 막내딸이고, 또 그 당시 아버지 사업이 잘
되지 않아 무시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라고 솔직히 말하고 사과를 하게 되었
다. 그후 그 학생은 다시 활기를 되찾아 퇴원하였고 가끔 잘 지낸다는 연락
을 해주었다.
무심코 던진 부모말에 멍든 다른 한 남학생의 경우를 소개해 보겠다. 몇
년전 한 남학생의 어머니가 필자의 진료실을 방문했다. 아들이 세 명 있는
데 그 중 막내가 남자답게 씩씩하지 못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고, 집에서도
혼자서 자기 방에만 있을 때가 많고, 학교친구들이 자기를 놀린다며 학교가
기도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릴 적에는 잘 지내 왔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서부터 서서히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부모도 성실한 편이고 큰 문제점은
찾을 수 없었다. 우선 학생을 한 번 만나 보자는 필자의 제의에 어머니는
몇 일간 학생을 설득하여 학생을 진료실로 데리고 왔다.
키는 큰 편이나 몹시 여위어 보였고 얼굴은 예쁘장하게 보였다. 필자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몹시 수줍은 듯이 얼굴을 밑으로 숙이고 앉
아 있는 모습이, 필자로 하여금 마치 예쁜 색시와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갖
도록 했다. 왜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는 지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대해서
처음에는 아무런 대답도 안하다가 얼마 뒤, 자기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씩
씩하게 살고 싶은데 친구들과 어울리면 자기 의지와는 달리 수줍고 부끄러
운 생각이 들어 씩씩하게 행동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면담을 통해서 그 이유를 밝혀내
고 다시 노력하면 씩씩해질 수 있다는 필자의 제의에, 학생은 처음에는 타
고난 성격을 어떻게 고치냐면서 거부하다가 끈질긴 필자의 설득에 나중에는
한 번 해보겠다고 약속하게 되었다. 여러 번에 걸친 면담에서 학생은 자기
가 어린시절 동안 여자옷을 자주 입었던 기억을 되살려 내었고 또 가끔 부
모가 자기에게 "네가 딸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얘기를 했었던
것을 기억해 내게 되었다. 또 자기가 여자옷을 입고 여자애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시던 부모님들의 모습도 기억하게 되었다. 그 학생이 씩
씩하지 못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게 된 것은, 어릴 적에 바로 이런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딸로 태어났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들이 둘 있기 때문에 딸 하나
를 낳아서 예쁘게 키우고 싶었는데…"라는 부모의 말과, 또 자기가 예쁜 여
자옷을 입고 재롱을 떨 때 즐거워 하시던 부모 모습이, 어린시절 동안 학생
으로 하여금 씩씩한 남자의 성격과 태도를 갖추도록 하기보다는 여자같은
성격과 태도를 갖게 한 것이다. 즉 자기는 남자로서는 부모로부터 환영받을
수 없고 여자여야 환영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
서 부모들이 좋아하는 여자 역할을 은연중에 계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격
형성에 가정 결정적인 어린시절동안 이 학생에게 형성되었던 이런 성격과
태도는 학생으로 하여금 씩씩한 남자처럼 행동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왜
냐하면 이런 점들이 무의식 속에 숨어서 학생의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얼마 뒤 부모와 함께 면담하는 자리에서 학생의 이러한 얘기를 들은 부모는
깜짝 놀라며 아무 뜻 없이 했었던 말에 그렇게까지 영향을 받을 줄은 몰랐
다고 하며, 결국 자기들의 욕심 때문임을 깨닫고, 학생에게 잘못된 점을 시
인하고 이제부터는 남자답게 씩씩하게 살아줄 것을 당부하게 되었다. 그후
몇 회의 추가면담을 통해서 남자답게 사는 방법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을 하
면서 그 학생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과거의
영향을 말끔히 지워내지는 못했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
게 노력하면 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후 그 학생은 학
교에 잘 다니게 되었다.
지금까지 무심코 던진 부모말에 멍든 두 학생의 경우를 말하고 또 치료과
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였다. 두 학생의 경우 모두 현실적인 어려움 밑에
는 과거 어린시절부터 지속되어온 부모형제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점들
이 깔려 있었다. 특히 부모들이 무심결에 말했었던 내용속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부모들이 생각할 때는 별 문제가 아닌 것 같아도 인격적으로 성숙
이 되어있지 않은 어린 마음에서 들을 때는 심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
린이에 있어서 부모의 위치란 자기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절대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출생후부터 생후 6∼7세경까지는 인격형성의 기초과정에 해
당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또 청소년
기도 정서적으로 불안전하고 예민한 시기이기 때문에 자칫 무심결에 내뱉는
부모의 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어머니가 화가나서 "나가 죽어라"고 한 말에 발끈해서 진
짜 죽으려고 약을 먹고 가족들에게 발견이 되어 병원 응급실로 오는 경우도
있다.
부모들이 무심코 던져 자녀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는 말들은 수없
이 많지만 흔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왜 저런게 태어나서 속을 썩이나?"
"차라리 내가 죽는게 낫겠다."
"옆집 친구 반만큼이라도 해라."
"너만 없으면 우리집이 조용할텐데."
"앞으로 네가 잘되나 두고 보자."
"이 웬수야."
"너 같은 것 필요없으니 나가 죽어라."
"넌 내자식도 아니야."
"너 같은 것은 밥먹을 자격도 없다."]
"짐승보다 못한 놈"
이런 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자녀에 대한 부모의 거부감과 관계
되어 있다. 이러한 말들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게 되는 것
은 바로 이 거부감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밥만으로는 살아 나갈 수 없다. 따뜻한 부모의 사랑
을 필요로 한다. 어떤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
다. 출생시부터 본능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잘 처
리되지 못할 때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게 된다. 그것이 직접 표현이 되면
비행이나 폭력을 만들게 되고, 마음속에 억압을 해두면 각종 정신장애, 노이
로제 그리고 정신병을 만들게 된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평소 부모형제들이 자기를 평가하고 대해 준 것처럼
남들이 자기를 평가하고 대해 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또 과거 자기
부모형제들을 대하던 기분으로 남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반응을 '아동기 정
서양상'이라고 부른다. 어린시절부터 부모에게 환영받고 한 인격체로서 대접
받을 때 그런 건강한 자존심과 긍지, 그리고 자신감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한 인격체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할 때는
자존심과 긍지에 손상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심각한 열등감 속에 휩싸여 건
강한 인생을 살아가기 힘들게 된다. 어린시절 동안의 부모의 모습은 그 사
람의 전 인생을 통해서 그 사람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고 나중에는 부모가
옆에 없어도 그 이미지 때문에 남들이 자기를 나쁘게 보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이 점을 잘
알아야겠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아무리 화가 나고 괴롭더라도 되도록이면 자
기의 감정을 억누르고 진지한 태도로 대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자녀가
잘못했을 경우에도 전혀 야단을 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말해
서는 안 될 내용의 말들을 홧김에 내뱉어서는 안된다는 얘기이다. 무심결에
내뱉게 되는 이런 말들이 자녀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