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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아닌 ‘성숙’ 가르쳐야

[특집] ‘성공’ 아닌 ‘성숙’ 가르쳐야






‘공부’는 만능 패스?


고등학교 2학년 딸과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고미연씨는 오늘도 고민이 많다.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는 바람에 아이들의 생활 지도는커녕,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공부를 곧잘 하는 아들은 자기밖에 몰라 부모로서 낯 뜨거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공부는 잘 해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반대로 고씨의 딸은 예의 바르고 남 위할 줄 알지만, 공부에 통 취미가 없어 늘 구박받기 일쑤다. 


올해 대학교를 7년 만에 졸업한 정희경씨는 아직도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넌 공부만 하면 돼’라는 말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세탁기조차 돌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부모의 말처럼 ‘공부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이런 사회는 낯설고 막막할 뿐이다.

이처럼 아이들은 ‘공부’라는 이유로 집에서 일종의 특권을 누리게 된다. 또한 형제가 여럿인 경우 성적이 우수한 자녀가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아이들은 가정에서부터 ‘성적이 전부’라는 생각을 주입받게 되는 것이다.

도벽에 퇴학, 살인까지… 성적이 뭐길래

그러나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 자리 잡은 학력지상주의는 점점 그 폐단을 드러내고 있다. 한창 뛰어놀며 사회성과 창의성 등 기본적인 인성을 길러야 될 아이들이 학원을 전전하면서, 정서가 메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학원강사 최지은씨는 최근 학원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자신의 책상에 놓아둔 가방에서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범인은 놀랍게도 이 학원에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였다.

최씨는 “딱 봐도 마냥 어리고 순진해서 꿈에라도 이 아이를 범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며 “알고 보니 이 아이는 이전 학원에서도 유사한 문제로 쫓겨났던 경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씨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그 어머니의 태도였다고 한다. 습관적 도벽은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한데도 아이의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학력지상주의의 이러한 폐단은 나라 밖에서도 불거진다. 지난 11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토머스 제퍼슨 고교에서 이민 2세인 두 학생이 교사의 컴퓨터를 해킹해 성적을 조작한 것이다. 졸업을 앞둔 두 학생은 학칙에 따라 퇴학당했고, 교사신분 사칭과 해킹 건으로 기소됐다.

지난달 한미 전역을 뒤집어 놓은 버지니아텍 조승희 사건도 학력지상주의의 폐단이 극대화된 경우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학업에서는 뛰어났던 조씨가 결국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큰 비극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분명한 삶의 가치 가르쳐야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해마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아이들이 나오는 현실 속에서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 제도적인 노력과 사회 전반의 의식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심수명 다세움상담목회대학원 원장은 “학력지상주의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부모도 노력해야 하지만 ‘인간교육 중심’으로의 제도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러한 문제가 구조적이어서 한 두 개인의 노력으로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현재 교육은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목적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학력관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인성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양식 있는 부모들도 대학에 보낼 시기가 되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해,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었다.

그러나 단기간에 시스템이 바뀌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들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데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부모 자신의 가치관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홍찬 한국기독교상담연구원 원장은 “삶의 목표를 물질적 성공에 둘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성숙에 둬야 한다”며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어 사회에서 성숙한 인격체로 행복하게 사는 방향으로 목표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모들이 좋은 대학 나와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삶의 목표라고 본다면 공부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성공을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비판했다.

심수명 원장도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조승희처럼 된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느냐”면서 “인간교육을 잘 시켜서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의 방향을 찾은 아이가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모들이 이러한 철학을 가지고, 실제로 아이들의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단한 노력이 아니라 작은 관심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심 원장은 “철저히 아동 입장에서 아이를 이해해야 한다”며 “부모가 자신의 욕구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사랑해서 이러한 가치를 제시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부모가 장기적으로는 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 원장도 “아이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아이의 정서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일에 관심을 쏟으라는 그는 ‘성적 이면의 다른 욕구를 고려하지 않으면 대형사고가 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을 경고했다.

서은하기자,sarah@newsmission.com(뉴스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