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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주일설교

나는 누구이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창12:1-3


제 목 :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본 문 : 창세기 12:1-3

설교자 : 김노아 목사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정치인, 경제인, 문화인, 샐러리맨, 주부,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나는 현재 어떤 위치, 어떤 형편에 있습니까? 그리고 내가 왜 현재와 같은 형편에 있어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그들의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자기 소유의 집도 재산도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인도하심만을 따라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그들이 의지해야 할 것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먹을 것을 위하여 농사를 짓지도 않았고, 고기를 위하여 사냥을 하지도 않았으며 적이 쳐들어 와도 전쟁 할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과 상식은 현재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애굽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소유가 적더라도 노력한 만큼 얻고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도자 모세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서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16:3)”

이스라엘 백성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도 섭리도 아닌 그들의 생존과 쾌락뿐이었습니다. 400년간의 애굽에서의 삶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의 방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하나님 안에서의 삶보다는 교회의 외적 성장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그들의 정체성을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왜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현실에 급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10가지 재앙의 능력을 애굽에서 경험하였으며, 홍해가 갈라지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그들을 인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지도자 모세는 모세오경을 통하여 그들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모세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모세는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을 통하여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것과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는 행보의 원인과 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목적을 말씀하시는데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심에 대하여 아브라함의 약력이나 학력이 전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아브라함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내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특별함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역사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버릇처럼 하나님의 뜻보다는 우리의 특별함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습니다.

“나한테 뭔가 눈곱만큼이라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만한 구석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다면 일찌감치 꿈 깨는 게 자기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길입니다.

창세기 12장도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함께 끊임없이 불순종하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의 모습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불가항력적으로 그 말씀에 따라 가게 되었지만 지실할 땅에 있어야 할 아브라함은 흉년이 들자 그곳을 떠나 애굽으로 피신하게 됩니다(창12:10).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아내와 애굽 왕과의 연애 사건을 통하여 다시 되돌려 놓으십니다. 본토는 떠났지만 친척을 떠나지 못한 연약한 아브라함에게 조카 롯과의 재산 분쟁을 통하여 친척을 떠나게 하십니다(창13:5-9).

그리고 창세기 12장에서 언약하신 내용을 15장에서 다시 상기시키며 언약을 하십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언약식인데, 새를 쪼개고 그 사이로 불을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게 이루어 질 것을 하나님께서 언약하십니다. 한마디만 하면 알아들어야 할 터인데 아브라함이 얼마나 의심이 많고 믿음이 없으면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우리들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그러니 이 언약식은 하나님께서 “내가 그렇게 말하였고 너와 함께 하면서 가르쳐 주었는데도 모르겠냐? 그러면 넌 새를 쪼개라 내가 그 가운데로 지나갈 것이니 이것은 내가 언약을 이루지 않는다면 그 새처럼 쪼개져 죽을 것이니다 라는 표징이다” 죽을 수 없으신 하나님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약속한다는 것은 우리의 죄악된 본성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가 하는 것을 잘 드러내 주는 장면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고 말씀하십니다.

여기까지의 말씀으로 광야에서 모세에게 불평을 늘여 놓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것과 광야에 있는 것과 가나안에 들어갈 이유에 대한 설명이 완료가 된 것입니다.

아직 못 알아듣겠습니까?

지금 당신이 잘랐다고 생각하시든지 못났다고 생각하시든지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 뜻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교회 건물을 짓는데 한 몫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가나안에 있습니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일생을 통하여 그를 교육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연단을 받는 것도 바로 그의 뜻을 올바로 알게 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사건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8-16)”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신 곳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예비하신 성입니다.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계속 가르치셨고, 모세와 함께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광야에서 가르치고 있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이 없는 그의 백성들에게 점진적으로 믿음을 갖게 하여 하나님 나라로 그들을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일컬어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향하고 있는 본향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아브라함과 아무런 상관이 없던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 뿐만이 아니라 온 세계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단지 샘플일 뿐입니다. 하나님 언약의 이루심의 절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요. 그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이 하나님 나라 안에 거하는 것이요. 그의 오심을 기다림이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을 가진자 만이 알 수 있는 복의 비밀입니다.

다시 질문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