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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 짧게 함축해서 설명하여 다수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반복 청취를 하시거나 텍스트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래도 이해가 안되지만 댓글로 질문해 주세요.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여 주십니다.


성경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은폐의 수단 (4:10-12)

어떤 이들에게는 허락이 되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감추어진 것인가? 성경의 증거로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6:9,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그렇다면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것은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들인데 하나님께서 방해를 하여서 못알아 듣도록 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본래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처럼 그 이유는 마13:19-22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결국 말씀을 들으나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인과 책임은 듣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자들에게 쉽게 설명을 해 준다고 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도 결코 그럴 수 없다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천국에 관한 말씀이다. 그리고 그 천국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예수님을 인정하고 그 다음에 그가 말하는 천국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당시 정치, 사회적 분위기는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고자 하여도 인정하기 어려웠다. 이미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는 새로운 정부나 반정부적 세력으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관해서는 이들은 맹인이자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다만 이들의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11:25-27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비유의 특성상 듣는 자의 가치관에 따라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이 비유로 천국을 말씀하신 특성 중의 하나이다.

 

2. 효과적인 이해

 

그 다음은 이와 상충되게도 가장 효과적으로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성경을 읽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처음에 질문을 제기했던 율법사에게 이웃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예가 된다.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깨달았던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어떤 이들은 그 놀라운 말씀에 감동하였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로 깨닫고 도망을 하였다. 결국 구원에 대해서는 은폐되었다는 말이 그 말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외방인들도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였다.

 

12: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결국 비유의 말씀에 대한 이해의 가장 큰 기준은 신앙과 불신앙이다.

 

여기에서 신앙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는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현제도 예수님 당시와 같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다양하다. 그러므로 같은 비유의 말씀을 듣지만 그 해석이 다양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 나라는 사회적, 정치적 질서 속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투쟁이나 전쟁과 같이 최선을 다한, 목숨을 바쳐 노력해야 하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번도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거나 임하게 하라고 하신일이 없다. 기독당을 세우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선물이지 결코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 속에 숨겨진 것으로 바라본다. 죽어서 이루어진다는 터무니없는 샤마니즘 신앙관을 제외하고서라도 미래의 천년왕국과 같은 개념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이와 같은 논리들은 사람을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여 무력하게 만드는데 과거 부흥사들이 많이 강조하였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다.

 

다음은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져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속주의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항상 마음을 지키고 수련을 해야 한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사회에 대해 방어적이고 도비적인 생활태도 유발하여 은둔적인 생활을 하도록 한다. 하루에 얼마를 힘써 일하였나 보다는 하루에 얼마를 골방에서 기도했느냐를 더 중요한 것으로 판단하게 한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올바른 이해의 출발은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는 분이라는 것이다.

 

22: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여기에 대해 이사야는 이사야4012-14절에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묘사하고 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이며 그 장소는 우주적이고 그의 영향력은 시간과 범위를 초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오심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왕권적 통치를 언약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죄의 용서는 우리의 내면 세계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도 용서하는 삶이 되도록 하신다. 미래에는 예수님의 속죄로 인하여 용서 받은 모든 자들이 영원한 세계 속에 거하겠지만 그 능력이 이미 현재 성도의 행동 양식을 새롭게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다.

 

고대사회의 유대인들은 사회를 인종과 사회계층 그리고 성별로 구분하였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인종적, 사회적, 성적 차별의 장벽들이 무너짐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의 차별은 사라지는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는 것은 현재의 삶 속에서 내면의 변화를 받아 그의 삶이 용서와 사랑으로 점철 될 때, 사회와 정치는 그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비유로 예수님이 말씀하시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이루가 가지고 있는 종교관의 어떤 부분을 강화시켜 주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통치 자체를 우리의 이야기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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