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주일설교 선한 목자와 삯꾼 김노아 2017. 1. 13. 17:07 목사가 목사들에게 고함 - 선한 목자와 삯꾼의 의미 -노아 김 태 우 목사 우리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삯꾼이라는 단어입니다. 삯꾼이라 함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목회를 하는 목사를 일컫는 말로 이해한다. 다른 말로 하면 직업적인 목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목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희생적인 그런 사람을 원합니다. 이 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삯꾼’이라는 단어는 목사들에게는 치명적이며 수치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마다 자신은 삯꾼이 아니라고 합니다. 꼬박꼬박 사례비를 챙기면서 말입니다. 사례비는 월급의 다른 게 표현 했을 뿐 결국은 동의어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요10:11-17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본문에서 두 종류의 목자가 대조적으로 나옵니다. 하나는 선한 목자이며 또 하나는 삯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선한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정의합니다. 반면에 같은 목자의 일을 하고 있지만, 양이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을 때에 도망가는 목자는 삯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선한목자와 삯꾼의 차이는 양을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위험이 닥칠 때에 목숨을 바쳐서라도 양을 살리고 삯꾼은 도망갑니다. 그렇다고 삯꾼이라고 책임감이 없다거나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월급을 받으며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형태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수단으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은 그 일의 한계를 넘어서서까지 일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직업군인, 소방관, 경찰관 등등 사람들의 인명을 보호하기 위한 직업들도 있어 숭고한 자신의 목숨을 남을 위해 바친 분들도 계시니 말입니다. 이런 분들을 예수님은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칭찬하십니다. 이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조금 감이 올 겁니다. 어떤 직업이든지 사랑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한계를 넘어서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선한목자라고 표현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는데, 자신이 목숨을 바치는 이유는 양들에게 영생을 주기 위함이요, 그것은 하나님을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예수님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를 믿고 따른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양들입니까? 예수님은 우리 안의 양과 우리 바깥의 양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다른 비유에서는 잃어버린 양도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족속과 민족이 다 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이 동일시하는 것을 신성모독으로 보고 그를 돌로 쳐서 죽이려는 유대인의 행동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그들이 듣기에는 신성모독이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돌로 쳐 죽이는 것이 합당하였습니다(레24:15). 하지만 진정 예수가 그리스도이면 그 증거를 당장에 보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는 일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알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에서 자신이 행하는 일이란 현세적인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지만 자기의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으로 인해 그가 하나님과 하나이신 그리스도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선한 목자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구원할 예수님 자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 외는 삯꾼이 돕니다. 결국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그 태도도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문에 대한 이해는 여기에서 끝입니다. 예수님만이 선한목자이시며 그 만이 양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신데 그가 그 양들을 위해 죽임을 당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날 목사들은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 의도는 알겠지만 그렇게 되면 목사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는 다른 해석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본문을 인용하게 되면 모든 목사나 종교지도자들은 ‘삯꾼’인 게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아닌 종교지도자는 목자가 될 수 없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분명하게 종교지도자들을 목자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베드로를 불러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을 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면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베드로가 사도가 되어 초대교회에게 장로들에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목자이며 목자로서 어떤 역할을 할는지를 가르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2-3)고 말합니다. 여기에서는 삯꾼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목자로서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대조하며 열거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해며, 돈 때문에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하며,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본이 되어라 합니다. 삯꾼이라는 말이 선한 목자와 대조가 되면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되었으니, 이제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봉급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목자의 반열에 있는 장로들에게 하는 말은 봉급쟁이처럼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직분을 감당해라는 말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시키면 세상의 참되시고 선하신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양으로 삼아주시고 영생을 주시려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시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양이기에 그가 하신 일을 알고 그 일로 인하여 감사하며 예수님이 세상에 하신 그 사랑을 전하며 사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양입니다. 다만 베드로나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말했던 목자는 예수님과 같은 목자가 아니라 직분 또는 은사로서의 목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직분을 받은 장로는 ‘억지로 하지 말며,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도 하지 말고 양들을 억압하지 말며 본이 되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본질적으로는 너도 양이니 잘난 척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사도시대의 교회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신학을 공부하고 난 후 적정규모의 건물에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갖추었을 때에 비로소 교회와 목사로 인정합니다. 이미 초대교회의 목자와 오늘날의 목자의 개념과 과정이 다릅니다. 사도시대 교회는 성도와 그리스도 그리고 성도간의 유기적 관계를 중요시 여겼지만 오늘날 교회는 유기적인 관계성 보다는 목회자 중심의 조직력을 중요시 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베드로가 정의하는 그런 종교지도자, 목자를 기대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과거 교회가 핍박을 받는 시절에는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득권의 자리에 선 오늘날의 교회들을 통해서는 이런 희생과 열정을 찾기가 어렵다. 오늘날 유기적인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목사도 삯꾼, 봉급쟁이가 맞습니다. 싫더라도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만 우리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 온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 그리스에게로 더욱 나아가서 참된 목자이신 그 분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공유하기 게시글 관리 온라인교회/Holybrand Church 저작자표시 '온라인주일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과 복음 (0) 2017.01.16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0) 2017.01.14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눅14:16-24 (0) 2017.01.10 성도는 왕인가? 왕이다. (0) 2017.01.10 지옥에서 온 편지/부자와 나사로 (0) 2017.01.08 '온라인주일설교' Related Articles 출애굽과 복음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눅14:16-24 성도는 왕인가?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