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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주일설교

국정농단과 교회세습을 향한 하박국선지자의 메시지


하박국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

선지자의 넋두리

선지자가 기도하는 이유

강포, 간악, 패역, 겁탈로 인한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다. 그 변론과 분쟁으로 율법이 해이해 지고 공의가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1:1-4)

이러한 것들로 인해 기도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응답이 없으시니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선지자는 질문하고 있다.

하나님의 응답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 벌어질 것인데, 이 사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것이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갈대아인을 일으켜 그들이 강포를 행하게 할 것이다. 그 힘이 무섭고 놀라와 열왕들과 백성들을 우습게 여길 것이며, 죄를 저지를 것이다.

선지자의 변론

하박국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계신다. 그는 공의롭고 선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갈대아인을 두신 것도 하나님의 공의와 선을 행하게 하심인 줄 믿고 인정하신다. 하지만 그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갈대아인들이 횡포를 일삼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을 신원한다.

하나님의 결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 믿음 하나님의 공의가 행하여져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어떤 능력의 응답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세상이 그가 하시는 일에 잠잠해야 할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 - 단5:1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벨사살

두부류의 사람

의인의 반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기다리는 사람과 악인과 연합하여 술 취하는 사람

술 취하는 사람은 그의 수취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 울 것이다(2:16).

의인의 삶
롬1:17 의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그 복음으로 인해 사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메시지

서론
지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것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거대한 권력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 권력을 사리사욕을 위하여 남용한 것에 충격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도 타락하여 초대형교회들이 줄줄이 세습을 하여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고 있다. 결국 부한 자들은 대를 이어 그 자리에 머물고 가난한 자들은 한탕주의에 빠지거나 그 부한자의 노예가 되어 부스러기라도 핥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바다와 같은 인간의 욕심이 결국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악한 자가 부와 권력을 누리고 의로운 자들이 그 강포와 위협 속에서 핍박을 당함을 보고 하나님을 향하여 항변하듯 넋두리를 한다.

본론
“하나님 내가 언제까지 부르짖어야 내 기도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폭력과 겁탈이고 이로 인하여서 변론과 분쟁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도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의 법과 악인의 권력 사이에서 무엇이 공의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타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박국 선지자의 넋두리이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질문입니다. 착하고 정직하게 하는 사람들은 가난을 면치 못하고, 불법을 저지르며 권력과 폭력으로 야합하는 자들은 부하게 되고 더욱 더 큰 권력을 갖게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정직하고 착하게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약속의 땅에 이르렀던 아브라함은 그곳에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12:10).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야곱은 그의 형 에서가 자신을 치러 온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의 재산과 가족들을 그 위험 속으로 먼저 보내고 자신은 얍복강가에 혼자 머물렀습니다(창32:3-21).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서 살지만(요일2:16),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으로 향하는 아브라함과 같이 자신의 신변을 재산과 가족을 이용하여 자신은 뒤로 물러서는 야곱과 같이 사는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변론을 하면서 자신의 삶이 정당한 것으로 서로 서로 죄의 합리성을 찾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한탄하면서 하나님에게 넋두리하고 있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유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인데, 하나님께서 바빌로니아 사람을 일으켜 세상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겠다고 합니다(합1:6). 그들이 얼마나 사납고 무서우며 무정한 자들인지 1장에서 계속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있는 하박국으로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선하시기 때문입니다(13절).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의 분명한 대답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였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공의를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과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에게 좋은 것,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오늘을 일컬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합니다. 상대의 생각보다는 선과 악의 판단 기준이 나에게 유익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린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착각일 뿐 모든 공의와 선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14).
악한 자가 흥하고 의로운 자가 해를 받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의를 굽히고 타락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는 달라지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세상을 심판하는 도구로 잠시 사용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믿고 교만하여져 술잔을 기울이며 그들의 수취를 드러낼 때 그들이 행한 것이 하나님으로 인해 그들에게 돌아오는데 바벨론에게는 멸망으로 유대인들에게는 수취로 돌아올 것입니다(2:16).
다니엘서 5장에서 바벨론의 영광을 누렸던 느부갓네살 왕의 아들 벨사살 왕이 1,000명의 귀빈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어 자신의 힘과 교만을 과시하며 이스라엘에서 노략한 금, 은, 기병에 술을 따르고 우상을 모아놓고 그 우상들을 경배합니다. 이때에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을 쓰는데,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이 새겨집니다. 아무도 그 뜻을 해석하지 못하였으나 다니엘은 그 뜻을 느부갓네살이 그의 교만으로 심판을 받아 죽었는데 그의 아들인 벨사살 왕도 그와 같이 교만하여 권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으로 인하여 심판을 받을 것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벨사살은 다니엘의 해석대로 그날 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율법을 지킴으로 인해 올 것이라고 믿었던 한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너의 소유를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실 때에 그는 고민하며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믿고 있던 율법의 의를 자신이 다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그의 행위로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나라의 독립이 이스라엘의 회복이 메시야를 통하여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먹을 것을 찾는 아브라함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자신의 안전을 찾는 야곱에게 안전을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하여서 지금 잠시 고난을 주는 것이며 이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임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롬8:18).
그 영광은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신 것입니다. 그 영광은 이미 야곱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눈으로 보이기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애굽왕과 자신의 아내를 통하여서 그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결국 아들 이삭을 줌으로써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야곱에게는 그의 지혜와 계략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그가 피할 바위라는 것을 얍복강에서 그와 씨름함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온백성의 구원은 우리가 우리의 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게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함을 그의 부활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깨닫지 못한 우리들에게 성령이 임함으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곧 하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것이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는 다시 돌아서 침륜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히10:39) 그 소망을 더욱더 굳게 할 것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이 우리에게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인정받으면서 살고 싶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하나님의 의가 아닌 세상의 지식을 따르겠습니까?
복음을 알고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인 줄 깨달은 사람은 다시 침륜에 빠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의가 온 세상의 영광으로 덮이는 것을 보면서 그 복음을 전파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들 이삭을 바치기까지의 믿음을 주신고 믿음의 조상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야곱에게는 그의 재산과 가족을 잃지 않고 형 에서를 만나 화평케 하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성령을 통한 삶을 통하여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화를 누리며 사는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을 이루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의와 공의를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