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의 율법과 복음
-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긍휼 -
노아 김태우 목사
아브라함의 언약과 출애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합니다.
먼저 아담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바벨탑 사건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는 실패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그 가운데서도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본격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다루어 가시는지 보여주시기 위하여서 하나의 민족을 선택하십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우리는 믿음의 조상됩니다.
하나님은 이제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을 이루고, 믿음으로 민족이 된 이스라엘로써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십니다.
믿음으로 민족이 되었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과 동일한 원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성은 창17:12-13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의 구성은 혈통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이든지 노예든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혈통적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예수님 당신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이 굉장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택하였고 그 조상의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택함을 받는 요소가 되었다고 자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다른 민족을 원수로 여기며, 그들을 타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질 근거는 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가나안 거주민들을 몰아내라고 하셨습니다.
민33:51-53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그 땅을 점령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 소유로 너희에게 주었음이라.”
그리고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에 대해서는 삼상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가졌던 선민사상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오심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이 선민사상은 산산이 부서지게 됩니다.
그들이 원수로 여김에 있어서 마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은 그들의 택함은 사랑에 있지 그들의 행함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신4:37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그리고 이스라엘은 모든 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모델이었지 그들만 구원하고 모든 나라는 심판하기 위해 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제사장 나라’이며 거룩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가지게 합니다만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의 삶은 하나님이 왕 되심을 철저하게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언약하심으로 이스라엘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라고 칭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의 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렇다면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에 까지 이르는 혈통적 계보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고 질문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마태복음 1장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통해서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혈통적 계보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계보에는 창녀와 불륜 등 수치스러움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난잡한 계보를 의도적으로 마태가 나열한 것은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혈통적 자부심을 깨고 예수님은 그들만이 아닌 온 세상의 구주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이 이렇게 형편없는 백성들을 어떻게 보물로 만들어 가시는지 출애굽을 통하여 살펴보겟습니다.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경험과 왕과 신들과 어떻게 다른지 하나님이 직접 알려주시고 역사를 통하여 증명하여 주시는 것이 출애굽입니다.
광야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출19:5)”
이 선언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넘어서 온 우주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 드라마의 시작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그들을 불러 “너는 내 보물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고 하십니다.
이것은 “내가 너를 택한 것은, 너를 모델로 내가 모든 나라를 구원하는 신임을 알리기 위함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백성을 축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세상 나라들에게 복이 되게 하기 위하여 구별하여 세웠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 걸리는 게 있는데 그것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입니다.
이 조건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이유는 분명 사랑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조건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참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도 그 답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시내산의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은 대인 관계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반영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심과 같이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서로의 재산을 보호하여야 했습니다(신14:12-18). 이것이 율법의 의미이며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지침대로 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배신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화가 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진멸하고 모세 한사람을 통해서만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출32:10).
여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이 숨겨져 있습니다.
인간은 타락 이후 스스로 의에 이를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행위의 결과는 죄로 점철되었습니다. 이렇게 무능력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왜 율법의 순종을 요구하였을까?
하나님 앞에서 조차 사망과 생명의 선택에서 사망을 택하는 무지한 인간에게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에게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0-33).”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율법은 결국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드러낼 뿐이었습니다. 순종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임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불순종은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결론은 긍휼이었습니다.
그 긍휼의 최정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하고 신실하게 언약을 지킨 종이요, 참된 이스라엘이요, 유일한 유대인이며(마3:17) 온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한(신6:5) 유일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 되셨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언약은 하나님이 체결하시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모델로 하여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겠다고 하였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들의 불순종으로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그를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소명과 지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벧전2:4-10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모세가 제한적으로 경험하였던 것 하나님의 영광은 이제 율법이 아니라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보며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고후3:7-18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이제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우심에 대한 의미가 출애굽의 이스라엘과 동일하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김으로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지만 이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모델이 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부류에는 이스라엘도 포함됩니다.
계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성도들은 새계명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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