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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단소리

설교는 목사만 해야 하는가?

설교는 목사만 해야 합니까?

우매한 질문일 것입니다.
설교를 넘어서 메시지에 대하여 논하자면, 메시지는 '언어를 도구로 하여 말하고자 하는 화자가 청자에게 설득하는 것입니다.'

설교에서 언어는 설교자의 음성을 주로 사용하지만, 이것은 고정관념일 뿐 실제 예배에서는 음성과 음악, 영상, 조명 등을 사용합니다. 단지 성도들이 설교만 메시지라고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설교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칙과 규칙이 정해져야 할 뿐입니다.

방송과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 속에서 실제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은 배우(넓은 의미에서)입니다. 그리고 배우 서로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배우들은 연기자일 뿐입니다. 배우가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나리오가 있어야 합니다. 시나리오는 작가의 몫입니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기자는 자신의 대사를 이해하고 외우며 어떤 연기를 할 것인가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그 연기를 어떤 배경과 상황 속에서 펼칠 것인지 연출자가 전체적인 구조를 설계합니다.

연출자의 지휘 아래에 카메라 조명, 음향 등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각자의 역할을 설정합니다.

일방적인 강연을 제외하고는 메시지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협력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에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는 예배학의 학문을 빌어 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맞추어 송영, 영창, 찬양, 기도, 설교, 신앙고백, 헌상, 성찬, 축도와 같은 순서를 가지고 전체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예배에 대한 인식은 전체적인 논리적 순서를 무시하고 설교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부교역자시절 주보를 작성할 때 목사의 설교 내용은 알지 못하고 본문과 제목만을 하지고 메시지를 짐작하고 예배 순서를 구성하였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성가대 찬양과 목사의 설교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에 기대해야 합니다. 굳이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성령의 역사에 기대해야 하지 실제로는 연관성을 가지고 기획되지 않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목사가 작가나 프로듀서의 역할만 해도 됩니다.

그 가운데 원칙이라는 것은 목사와 성도가 성경해석에 대하여 일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성경본문에 관한 해석이 모든 예배자와 공유가 되었다면, 하나님이 성경본문을 통하여 어떤 메시지를 주기를 원하시는지 모두가 공감한다면 메시지 전달의 방법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와 달란트를 활용하여 메시지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음악, 댄스, 연극, 영상, 조명 모든 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거룩하신 분들이 모든 메시지의 도구 앞에 거룩한 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기를 원하시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런 형용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 Seeker Service입니다.

의도는 비신자를 위한 예배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메시지만 온전히 전해진다면 그 대상이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1.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2. 어떻게 기획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3. 성도들의 은사나 달란트를 파악하고 있지도 못하다.
4.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5. 성경 지식을 공유하지 못한다.

목사만 예배하고 목사만 설교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순간 교회는 성숙하여집니다.

순서를 바꾸어 교회가 성숙하게 되면 목사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설교에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는 예배가 아니라 드리는 예배가 이루어집니다.

모두 설교자(예배자)가 되기 위하여 준비해야 할 것들,

1. 성경해석이 일치 또는 대동소이 해야 한다.
2. 성도들의 은사와 달란트가 파악이 되어야 한다.
3. 성도들의 은사를 활용할 디렉트가 있어야 한다.
4. 전체를 관장할 수 있는 프로듀서가 있어야 한다.

이런 전문가 집단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인식될 수 있겠지만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성령이 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도들에게 은사(능력)를 주셨습니다.

지체로서 받은 은사들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목회입니다. 그리고 목회라는 것에는 이미 프로듀스의 역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힘들게 여겨진다면,

목사는 성도들의 은사를 파악하여 예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쓰야 합니다.
적어도 회중 찬송이나 성가대 찬양 그리고 설교로 이어져 축도로 마무리 되는 과정에서 찬송과 설교 그리고 축도에 논리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준비찬양'이라는 오래된 폐습은 사라질 것입니다.

장로교에서 강도권과 축도권은 목사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한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은사를 무시하고 하나의 방식으로 설교해라는 것은 아닙니다.
패러다임을 바꾸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모든 성도들이 말씀으로 풍성해 질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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