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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구원

복음과 구원(개혁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관점 비교)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행위 

 

"복음과 구원"

 

이 두 단어는 그리스도인이면 언제든지 말하고 언제든지 생각하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거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구원에 대해 온전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조직신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구원론은 방대하고 복잡하게 보이는 것을 어떻게 간단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논의 되어야 하고 설명되어야 한다.

 

 

먼저 구원이 필요한 것은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원죄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따로 말하지는 않겠다.죄인인 인간은 그 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며 언약이므로 그 근원은 하나님에게 있다." 이 전재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리고 이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완성되었으며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렇다면 구원에 대한 관념의 차이는 무엇인가?

 

 

개혁주의에서 말하는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이며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죄인이 어떤 상태에 있던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언약으로 신비한 연합을 한 성도의 구원은 영원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가 그에게 영원히 전가된다. 이것이 법이다.이 법적인 요소는 도덕적인 요소보다 우선한다.여기에서 법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는 인간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 그 뒤를 잇는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비도덕적인 행위를 하여도 되는가?

 

 

이것이 법이다. 라고 말하면 그 법은 도덕보다 앞선다. 그렇다면 위의 반론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 이다.

 

 

이 대답을 듣고 나면 머리가 아파진다. 그리고 화가난다. 왜냐하면 구원이 죄를 지어도 되는 면죄부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법이 도덕을 앞선다는 말은 법이 도덕을 무용지물로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며 그의 통로인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도록 변함없이 지속된다.

 

 

이렇게 새 피조물이 되는 것은 사탄이 자신의 주인이었던 것에서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 주인은 거룩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것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은혜로 그와 연합하였기 때문에 그의 영이 성도 안에서 거룩한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성도는 회개와 믿음으로 칭의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다.

 

 

면죄부를 받아 마구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의 주인이 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미니안주의 입장에서의 구원은 좀 다른 면이 있다. 그리고 우리 실정의 기독교의 구원관은 개혁주의에 있지 않고 알미니안주의에 가깝게 있다.

 

 

여기에서는 차이는 있지만 지면상 웨슬레적이거나 복음주의적 알미니안주의도 함께 포함했다.

 

 

첫번째 아담으로부터 죄가 들어왔듯이 두번째 아담으로부터 구원이 임하였다. 이는 보편적인 죄의 전가와 함께 보편적인 구원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관념적으로는 원죄 또는 자연적인 죄를 인간이 지니고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는 원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제 인간의 선택만 남아있다. 인간은 타락하였지만 여전히 영적으로는 선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며 이 신앙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 그리고 칭의가 인간을 중생하도록 도와준다. 신앙으로 거듭난 성도는 복음적 순종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며 이 세상에서 성결을 완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도 있다.

 

 

이미 하나님께서 열어놓은 구원의 문을 향하여 인간이 스스로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온전한 성결에 이를 수도 있다. 이것이 '초자연적인 은혜의 사역'이다.

 

 

알미니안주의는 문은 하나님이 열어 놓았지만 그 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은 인간에게 달린 것이라고 말한다.그리고 오늘날 이것이 보편적인 구원관으로 교회에 자리잡고 있다.

 

 

서로 다른 구원관을 비교해 보았습니다.현재 우리는 두사상 중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