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김 노아 목사
들어가는 말
결혼 전에 선배들에게 결혼생활에 대해 물어보면 “신혼 초에 주도권을 잡으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 말을 하는 선배들은 이미 신혼 초에 주도권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말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도권을 잡지 못했으니 너만이라도 그렇게 살지 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괜치 주도권 잡으려고 덤비다가 낭패를 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애와 결혼은 다른 것이다.
연애를 짧게 한 사람은 잘못 느낄 수 있겠지만 오래된 연인들이 느끼는 것이 있다면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면서 첫 키스를 할 때가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난다고 하는 그 첫 키스 후에는 두 사람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키스를 시작으로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라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 아담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혼자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아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 여자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때 아담은 아름다운(여자라고는 이브밖에 없었으므로) 이브를 보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에 뼈로다” 사람이 적하고는 싸워도 자신을 스스로 고통과 불행으로 몰고 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살을 해하고 뼈를 상하게 하는 사람은 자해 공갈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여자는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배필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도록 하였습니다.
부부는 서로 한 몸이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하며, 자신을 위해 서로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는 불완전했던 것이 둘이 됨으로 완전해 지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선악과’라고 하는 것이 나타나 시험을 하였을 때부터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자가 처음 유혹에 넘어갔으며 다음으로 남자가 함께 그 유혹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남자인 아담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만들어 주신 이 여자가 나에게 죄를 짓도록 하였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여자와 그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에게로 돌리고 만 것입니다. 자신의 살과 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거역하므로 불행이 찾아 와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결혼을 하면서 연애 때의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자신의 살과 뼈의 존재를 이기적이며 소유적인 마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돕는 배필로서의 서로의 역할이 바뀌어 진 것은 아닙니다.
사모하는 사람과 순결한 사람
남자가 혼자 있을 때에 그는 여자를 사모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쫓겨 난 후에는 아담과 그의 후손은 여자만 보면 사모합니다. 그래서 하와는 남편 아담이 일하러 나갔다가 들어오면 갈비뼈부터 세어 보았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없는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갈비뼈 하나만 취해서 여자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아담이 원하는 대로 여자를 만들어 주었다면 지금 남자들은 아마도 갈비뼈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가 있거든 돌로 쳐서 죽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가정의 순결을 원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말하기를 ‘애인 하나 없는 사람은 바보다’라고 말하는데 그 사람은 그냥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인 것입니다.
결혼 사람들은 사모하되 자신의 배우자를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보호하며, 아내는 남편을 주인으로 알아야 합니다.
가정의 머리
오늘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든지 성경에서 여자들은 남자를 주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어떤 여자 분이 말씀하시기를 여자는 목이라고 하더군요. 머리를 움직이는 것이 목이기 때문이랍니다. 이것은 성경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말입니다. 남자가 머리라고 하는 것은 가정을 대표하는 권위를 말하는 것이지 지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남자가 말하면 여자는 무조건 순종하고 여자의 말은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둘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이 “여보 오늘 밤 어때?”하고 말하면 여자는 “당신이 원하시는대로 하세요.”라고 대답하고 여자가 “여보 오늘밤 어때요?”라고 말하면 남편도 “당신이 원하시는대로 하세요.”라고 대답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이 한 몸이라는 증거이지 일방적인 것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머리
사람이 아무리 주도권을 말하여도 세상의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가정도 예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이심을 죄로 눈과 귀가 가리워진 사람들에게 알게 하기 위하여서 높은 하늘의 권위를 버리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자신의 가정을 파괴하고 이웃을 파괴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모든 사람들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지금 새롭게 가정을 꾸미는 오늘 신랑, 신부의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그 분의 사랑은 죄와 허물로 가득한 우리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주도권을 잡으려면 배우자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리고 그의 허물과 죄를 나의 것으로 삼고 그를 대신하여 죽으십시오. 이 일은 두 사람이 함께 해야겠지만 특히, 가정의 머리가 되는 남편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에는 “남편들이여,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한 것과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배우자의 허물을 사랑하고 나아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복종을 할 줄 압니다. 복종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향하여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순종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아내들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아내들이여,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것은 남편이나 아내가 잘할 때 해라는 조건절이 아니라 비록 그렇지 않더라도 해라고 하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고 믿으면 이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가정의 천국을 맛볼 것입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좋아져서 결혼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노사연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노래했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에 우리는 ‘운명’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더 적확한 말은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한 것 같고 내가 다 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배필로 정해 두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부부를 맺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맺어 주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나누지 못함을 압니다.
고통과 위기가 올 때, 혼자인 것과 같이 느껴질 때, 원망함이 솟아날 때 그 때 두 사람은 진정으로 부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맺어준 그 거룩한 관계를 스스로 나눕니다. 일명 돌싱이 됩니다. 아교풀로 붙여 놓은 것을 뜯으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 밖에 남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두 사람은 돌아가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것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소망의 안식처입니다.
사람이 제일 행복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난 후 집에서 쉬는 것입니다. 그것도 혼자 쉬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특히 배우자의 곁에서 쉬는 것이 참된 안식입니다. 성도가 쉬는 곳은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이요. 사람의 쉼은 가정에서의 안식입니다. 혼자 또는 지인들과 낚시하며 골프 치며 쉬는 것은 참된 안식 아니라 세상이 우리에게 거짓말로 가르친 안식입니다.
이 세상에 완정한 가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가정을 소망하지 않는 가정은 참된 가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함께 소망을 가지고 하늘에서 우리에게 주실 완정하고 행복한 가정을 소망하십시오. 그리고 그 소망을 서로 나눕십시오.
비가 올 때는 굳은 땅을 서로 말하며, 풍랑이 일 때는 곧 다가올 평온한 바다를 이야기 하십시오. 이 일을 위하여 이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증인들 앞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약속하는 것이며, 그 길을 향하여서 나간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시며, 이제 두 사람이 주도권을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정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며 서로 사랑의 길로 가는 것을 다짐하며 출발하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가정의 모범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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