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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 비판

기독교적 관점에서 다빈치코드 비판

교회가 존재해온 시간만큼이나 오랜 세월 동안 음모와 암호가 숨겨져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빈치 코드는 기독교를 왜곡하고 있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고,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 프랑스의 왕족과 결혼했다고 쓰였다.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교회는 고도의 비밀조직이 이와 관련된 역사적 진실을 기록한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 문서가 세상에 공개되면, 현재의 기독교는 완전히 파멸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려는 교회의 음모가 있다는 소문은 수세기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다. 이런 형태의 내용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들 때문이다.
저자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을 주와 구주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직접 공격하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는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적 신성을 세상에서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문서와 이론들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 중심적 지배구조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는 여신숭배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또 기독교가 몇 개의 조작된 거짓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빈치 코드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 책이 어떤 근거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 제목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시온 수도회의 회원이었다는 주장 때문에 그렇게 붙여진 것이다. 시온 수도회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에 관하여 알고 있는 소규모의 비밀 조직이었다.
그들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을 수 있는 이 어마어마한 비밀을 폭로하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의 반대 때문이라고 한다. 시온 수도회는 바티칸의 보복을 피하고자 이 비밀을 암호처럼 그림이나 책 그리고 조각품에 은밀하게 표시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식자들만이 암호를 해독하여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의 숨겨진 메시지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했으며, 성배는 잔이 아니라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은 역사적이 기록의 일부라고 말한다.
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그려진 배경을 살펴보면, 수도사들이 식사를 하면서 그림을 감상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로도비코는 다 빈치에게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결국 산타 마리아 텔레 그라치에라는 도시에 위치한 도미니카 수도원의 식당에 이 그림이 걸리게 되었다.
다빈치 코드에 의하면 예수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던 다빈치는 그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오른쪽에 요한이 아닌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 그림에서 식탁위에 잔이 없는데, 이는 마리아가 성배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 일부로 그렇게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그림을 보면 우편에 앉은 요한이 여자 같은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시카고 예술학교의 브루스 바우처는 저자의 해석에 반박했다. 예수의 우편에 앉은 자가 요한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는 저자의 해석은 억지라고 했다. 전통적으로 플로렌스의 화가들이 그린 최후의 만찬은 성찬의 제정과 성찬용 잔보다는 유다의 배신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레오나르도의 작품도 그런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요한의 얼굴이 여자처럼 그린 것은 레오나르도뿐만이 아니라 플로렌스의 다른 화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의 우편에 앉은 사람이 여성의 가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또 그리스도의 피를 담은 잔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주장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하는지 살펴보았다. 예수께서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사용하신 잔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 잔을 성배라고 부르며 그 잔에 마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다는 이야기가 12세기에 떠돌았다는 것이다. 이런 전설 중 상당수가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에 만들어진 희랍 신화에서도 발견된다. 이처럼 여러 세기동안 사람들은 성배가 물건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5세기 무렵에 성배는 물건이 아니라 가계라는 사상이 생겨났다. 다빈치코드는 예수의 혈통이 바로 성배라고 말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혈통을 계승시켰으며 예수는 후손 중 한명이 프랑스의 메로빙 왕조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 예수와 결혼했다는 증거가 있는가?
영지주의 복음서들의 몇몇 구절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언급되고 있다. 기독교의 성경에서도 물론 언급되고 있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자이다. 일부 교회의 사람들은 그녀를 사도중의 사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신약성경의 기자 누가는 한 무리의 여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을 따르면서 그들을 재정적으로 도왔다고 밝힌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 그 당시의 전통적 관습과는 달리 여자들이 자신과 함께 다니며 돕는 일을 허락하셨다는 점이다. 당시 랍비들은 왜 이토록 여자들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주는지 전혀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 8장에서 예수를 위해 봉사한 여인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7장에서도 한 여인이 예수를 찾아온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59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부활절 설교에서 누가복음 7장의 창녀가 누가복음의 8장의 막달라 마리아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서 일곱 귀신이 쫓겨났다는 것과 그녀가 예수 부활의 최초 목격자라는 것이다.
예수를 섬기게 된 일을 계기로 막달라 마리아는 살로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그리고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어울리게 되었다. 이 용기 있는 여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십자가 아래 서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사람들이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세마포로 싸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두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처럼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깊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이었다는 암시는 성경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녀는 구주의 사랑과 자비를 얻을 정도로 정숙한 여인이었다. 예수가 부활한 이후에 예수를 만났다는 기록 다음으로는 그녀에 관한 기록이 신약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성경에서 여성은 그 역할은 남성들과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남성들과 동등한 지위에 놓인다. 다빈치코드의 예수는 최초의 여권신장주의자라는 주장은 옳지 않는다.
또 다빈치코드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 사실을 숨긴 교회의 행위는 역사상 가장 큰 은폐 행위이다‘라고 말한다.
영지주의 복음서들에 그들이 결혼한 사실에 대한 증거가 발견된다고 한다. 사실 영지주의 복음서들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음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빌립 복음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반려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예수는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다. 예수는 모든 제자들보다 더 자주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으며, 제자들은 ’왜 선생님은 우리보다 그녀를 더 사랑합니까?‘ 라고 물었다. 구주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왜 내가 너희를 그녀만큼 사랑하지 않는냐? 앞을 볼 수 있는 사람과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함께 어두움 속에 있다면 그들 사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느니라. 그러나 그곳에 빛이 비추어진다면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빛을 볼 수 있지만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은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있느니라.”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빌립 복음서의 원본을 담고 있는 파피루스는 훼손되기 쉬운 재질이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온 원본에는 한 두 단어가 빠져 있었다.    이 빌립 복음서는 3세기에 쓰여 졌고, 이 시대는 예수의 시대로부터 약 200년이나 동떨어진 시대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두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창조하는 신은 악하다고 믿었다.
누가 빌립 복음서를 썼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전혀 없고, 신약의 빌립이 쓰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또 마리아 복음서에 의하면 막달라 마리아는 구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마리아 복음서의 이런 기록은 영지주의에 입문한 소수 집단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비전적 교리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이다. 이 복음서는 여자들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적인 계시도 감독들의 교훈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암시하기 위해서다.
영지주의 복음서들에 나오는 이런 이야기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녀가 예수와 이성적인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은 근거 없는 비약이며, 예수와 결혼했다는 것은 억지이다.
다빈치코드는 귀가 얇아 잘 속는 독자들을 현혹하려고 공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저자는 당시에 남자가 결혼하지 않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예수가 인간이었기 때문에 이성과의 교제와 성 관계를 원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이 맞는다고 가정해도 그것이 곧 예수의 결혼 사실을 증명해주지는 못한다.
예수를 가장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마태나 요한 같은 신약성경 기자들은 예수의 결혼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만일 예수가 결혼했다면 그들은 그 사실을 기록했을 것이다.
결혼이 고귀하고 순결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께서 결혼을 하셨으리라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분은 인간이셨기 때문에, 특히 죄 없는 인간이셨기 때문에 결혼을  하셨을 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신이신 그분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내밀한 육체적 관계를 죄인과 맺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만일 결혼을 하셔야 한다면 거룩한 존재와 해야 하는데 그런 존재는 없다.
물론 미래의 언젠가 결혼을 하실 것이다. 그분에게는 결혼식이 남아있다. 그분은 지금 그분의 신부가 될 교회와 약혼하셨다고 성경에 나와 있다. 장차 하늘에서 결혼식이 있을 것인데, 그것을 아시는 그분이 결혼을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미래에 나는 막달라 마리아와 더불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을 것이다. 그 혼인잔치는 육체적인 결합이 아니라, 가장 복된 영적 연합이 될 것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계19:7~9)” 성경에 쓰여 있다.
장차 어린양의 신부와 결혼하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결혼하지 않으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라는 초대장을 보낸 분은 영지주의자들의 예수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이시다’.
나는 기독교를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빈치코드 책과 영화를 다 봤지만 거기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이다. 단지 저자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 같다. 세상엔 많은 사실을 왜곡하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확실히 판단해야 한다.   종교와 상관없이 그 자체 종교의 참 의미를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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