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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毒… 과보호시대 어린이 행동장애..

《원하는 대로 안 해 준다고 길거리에서 드러눕거나, 어린이집(또는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아침마다 대성통곡한다. 이런 행동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아동 행동장애를 의심해 봐야 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는 ‘귀한 자녀’를 과잉보호해서 생기는 증상”이라며 “아이와 함께 부모가 변해야 고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과잉보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아동 행동장애는 어떤 유형이 있으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김홍주(3·이하 모두 가명) 군은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울면서 컵, 음식, 장난감 등을 집어 던졌다.

홍주는 올해 3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을 처음부터 싫어했지만 어느 날 친구와 싸워 교사에게 야단을 맞자 아예 물건을 집어 던지며 등원 거부 시위(?)를 벌이게 된 것. 엄마가 화를 내자 홍주는 머리를 벽 또는 마루에 박는 자해까지 했다. 아버지가 큰소리로 야단치고 매를 들면 겨우 말을 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생 권정호(7) 군은 학교에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고, 수업 중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나가거나 화장실에서 줄을 서지 않아 친구들과 갈등을 빚었다.

보다 못한 부모가 정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정호는 의사에게 “집에서는 내가 왕이에요”라고 말했다.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정호는 엄마에게 물을 달라는 의사 표시를 할 때 손가락을 까딱하며 컵을 가리키는 등 거만한 모습을 보였다.

최순영(5) 양은 “엄마가 해 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조금만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기면 엄마에게 기댄다. 엄마는 “네가 한 번 해봐”라고 말하지만 무조건 못한다고 우기고 안 해 줄 경우 울음보를 터뜨리는 등 막무가내다.

연세대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송동호 교수가 과잉보호로 인해 행동장애를 보이는 아이를 대상으로 ‘놀이치료’를 하고 있다. 놀이치료에는 편안한 분위기가 중요해 의사 가운 대신 평상복을 입는다. 사진 제공 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부모와 관계가 문제=이 세 어린이는 결국 병원을 찾아 행동장애 판정을 받았다.

홍주는 부모가 맞벌이라 4개월 때부터 동네 아줌마가 키웠다. 아줌마를 친엄마처럼 따르면서 엄마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아이들은 양육자와 떨어지면 불안해하는 ‘분리불안’을 겪는다. 이 분리불안은 보통 만 3세 무렵에 극복된다. 홍주는 분리불안이 극복되지 않았고 억지로 아줌마와 분리되는 상황이 오자 ‘분노 발작’을 일으킨 경우다.

홍주는 잠시 어린이집을 그만뒀다가 아줌마의 인도로 다시 어린이집을 다니라는 처방을 받았다. 엄마는 홍주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병원에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관찰하고 지혜롭게 들어주는 방법을 교육 받았다.

정호는 ‘유사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fake ADHD)’란 진단을 받았다. 양상은 ADHD와 비슷했지만 원인이 달랐던 것.

ADHD에 걸린 아이는 정호처럼 지나치게 산만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한다. 이런 아이는 많은 경우 뇌의 맨 앞부분(전전두엽)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정호는 컴퓨터 측정 및 면담 결과 뇌에 이상이 없었다. 단지 부모의 과잉보호로 ‘버릇없어진’ 아이일 뿐이었다.

순영이는 과잉보호로 인해 나타나는 행동장애의 대표적인 증상들을 보였다.

가톨릭대 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신경정신과 권용실 교수는 “과잉보호 받거나 일관된 방식으로 키워지지 않을 때 아이들은 행동장애를 겪을 수 있다”며 “많은 경우 부모와 관계 설정이 잘못돼 행동장애가 생긴다”고 말했다.

▽‘최적의 좌절(optimal frustration)’을 겪게 하라=전문의들은 만 3세 무렵이 되면 아이가 ‘큰 뒤에 후유증이 남지 않는 최적의 좌절’을 겪어야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신민섭 교수는 “만 2세까지 아이의 성장에 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는 아이의 요구를 즉각 들어주는 게 좋다”며 “하지만 3세 무렵에는 ‘유아적 자기애’가 깨지는 경험을 해야 이후에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적의 좌절은 아이에게 왜 지금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지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욕구를 잠시 참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책을 보고 있는 엄마에게 아이가 “블록 쌓기를 하며 놀아 달라”고 졸라대면 그 즉시 읽던 책을 치우고 아이와 놀아주면 안 된다. 엄마는 엄마대로 할 일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엄마가 읽던 부분이 끝나고 나면 너와 놀아 주겠다”며 읽던 책을 계속 읽는 게 좋다는 것이다.

정호처럼 최적의 좌절이 없이 자란 아이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송동호 교수는 “아이가 떼를 쓰는 게 위험하거나 지나치다고 느낄 때, 별것 아닌 일에 아이가 좌절할 때는 전문의를 찾는 게 좋다”며 “당장은 정신질환이 없다고 해도 이를 가만 놔둘 경우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해보세요▼

자녀 양육에서 부모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가 태어나 최초로 만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부모를 사랑하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성격 형성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신민섭 교수에게 부모 교육의 원칙을 들어봤다.

● 부모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원칙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만 관심을 가진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취하면 화부터 낸다.

△아이가 하는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안 돼”라고 말한다.

△안 된다고 했던 일을 해 줄 경우 “이번만이다. 다음부터는 안 돼”라며 들어준다.

△잘못에 따른 벌을 주고 나면 평소에는 금지해 왔던 일 중의 하나를 들어준다.

● 부모가 반드시 해야 할 행동 원칙

△아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즉각 관심을 보여 준다.

△엄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바람직한 행동에 대해 “엄마가 말한 대로 해서 기분이 참 좋구나. 고맙다”라든지 “네가 ○○을 했을 때는 정말 훌륭했다” 등 아이를 인정해 주는 표현을 한다.

△지시를 내리기 전에는 아이를 산만하게 만드는 TV나 컴퓨터 등을 끄게 한다.

△‘스티커 제도’를 도입해도 좋다. 목표한 행동을 달성하면 칭찬 스티커를 붙여 주는 것이다.

△공공장소에 가기 전에는 지켜야 할 규율과 어길 경우 가할 단계적인 처벌을 미리 알려준다.

▼ 이럴 땐 행동장애 의심하세요▼

△떼를 쓰는 좌절 행동이 줄어들지 않을 때

△떼를 쓰는 좌절행동이 위험하거나 지나치다고 느낄 때

△떼쓰기가 3개월 이상 지속될 때

△아이를 달래는 방법이 효과를 보지 못할 때

△양육자와 관계가 좋지 않거나 불안정할 때

△별것 아닌 일에 아이가 좌절할 때

△정서상태와 정서반응이 불안정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울 때

△감정조절이 어려울 때

△언어발달이 지연될 때

△양육자가 양육에 대하여 좌절할 때